#73 한국 서브컬처 비평은 어떤 모습인가?
강신규, 《서브컬처 비평》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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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66호)에 관해 쓰며 구독자분들께 ‘평소에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시는지?’ 물었었다. 모두 열한 분이 대답해 주셨고, ‘예’ 55%, ‘아니오’ 45%로 근소한 차이지만 ‘예’가 우세했다(’아니오’라고 하신 분들 중에는 가끔 보긴 하지만 즐겨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분들도 포함돼 있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서브컬처를 고급문화(high culture) 혹은 주류 문화(mainstream culture)에 대한 ‘하위’나 ‘저항’ 문화라기보다는 ‘주변부’의 취향 공동체로, 전체 문화 속 문화, 혹은 사회 내 다양한 문화들(cultures)로 규정한다. — 《서브컬처 비평》, xi
사실상 각종 문화 간 경계가 희미해진 상황에서 굳이 ‘서브컬처’라는 개념에 매달리는 것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계가 희미해졌다고 해서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곳곳에 스며들어 우리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서브컬처는 본성상 대중의 취향을 좇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는, 시대의 초상, 지향점, 현주소, 의미, 민낯 등등 뭐라고 표현하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실타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 서브컬처 비평의 역할일 것이다.
《서브컬처 비평》, 강신규(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서브컬처 비평》은 저자 강신규씨가 2016년에 〈문화/과학〉에 게재한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비평을 중심으로〉를 확장시킨, 122페이지의 얇은 책이다. 그러나 서브컬처 비평에 관한 이론은 대부분 일본 비평가들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국 서브컬처 비평’을 주제로 여러 쟁점을 제기하며 완벽하진 않더라도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1에 대한 비평이 한국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참고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종종 잊는 경우를 봐 와서 더욱 반갑다.
저자가 서브컬처 비평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독창적인 이론 및 방법론 발굴
비평의 역할 (재)정립
총체적 통합의 불가능성/불필요성에 대한 인식
이 중 세 번째를 가장 역설(力說)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내 생각에도 실제로 많은 것이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도권, 비제도권을 막론하고 이제 비평 논의에 요구되는 것은 ‘총체적 통합의 불가능성 혹은 불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비평과 비평 아닌 것, 비평 공간과 비평 공간 아닌 곳, 비평가와 비평가 아닌 사람 사이를 구분하는 선은 수명을 다했다. 전문가 수준의 향유자, 전문가에게 없는 경험치를 지닌 향유자, 어디서나 격전이 벌어지는 비평 공간, 기존의 정형화된 비평을 넘어서는 비평이 넘쳐난다. 더 이상 서로를 구분하는 선 자체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브컬처 비평이 나아갈 방향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서든, 그리고 그게 누구든) 타인의 비평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관점이 지닌 타당성을 물으면서, 타인과 자신의 비평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는 일이다. (59-60)
이 책의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서브컬처 비평의 자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참고하는 기존 비평 이론들에 대한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다. 거론되는 이론은 형태 분석, 기호론적 분석, 수용 이론 정도인데, 서브컬처 비평과의 연결 가능성에 관해서는 아주 짧게만 언급한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한 일본 서브컬처 비평가 — 특히 아즈마 히로키(65호 참고) — 에 대한 의존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물론 그의 이론이 서브컬처를 포함해 현대의 문화 현상들을 설명하기에 좋은 틀을 제공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다소 손쉬운 선택이 아니었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물론 나도 아즈마 히로키의 책들을 읽어볼 생각이다).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지만 ‘한국 서브컬처 비평’에 관한 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쟁점과 한계를 파악하기에 좋은 책이며, 저자가 참고한 문헌, 논문 목록도 이후 관련 지식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서브컬처에는 많은 장르가 있지만 저자는 이 세 가지가 “한국 서브컬처의 등장과 진전 과정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냈”(xii)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사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https://x.com/booksnchamchi/status/1971385790715527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