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신념을 인간적이며 물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고투기
아즈마 히로키, 《지知의 관객 만들기》 (2025)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편견'이 하나 있는데, 일본인 저자들이 쓴 책은 대부분 별로라는 것이다. '대부분'이라고는 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내가 선택했던 책들 중 60% 이상은 그랬던 것 같다는 경험으로부터, 그것도 부정확한 추산에서 나온, 그야말로 편견이다. 초기에는 의심 수준이었던 생각이, 수준에 미달하는 책을 몇 번 연달아 만나게 되자 확신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 책들의 특징은 독자의 요구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듯한 제목, 세심하고 자세히 나열한 목차, 친절하며 풍부한 도해, 해당 분야에 전문가로 보이는 저자의 이력, 일본 독자들로부터 받은 열렬한 반응 등이다.
그러나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곧 실망하고 마는데, 그토록 상세한 목차의 소제목 아래에 있는 내용은 짧고 평이하며, 소제목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페이지에서 시작하니 여백으로 분량을 채우는 어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책에서 얻은 것은 거의 없는데 어느새 책은 끝나 있다. 예고편이 전부인 영화가 있듯이, 목차가 전부인 책이다. 사람들이 목차를 보고 책을 선택한다는 것을 이용한, 영악한 장사 수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장점 하나를 들자면, 대부분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서 읽기가 쉽다는 것이다. 일본어의 특징인지, 대중친화적인 책을 만들기 위한 편집자의 노력인지, 일본어 번역자들의 뛰어난 능력 덕인지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쉽게 잘 읽힌다.
만약, 깊이 있는 내용과 쉽게 읽히는 특징이 결합된 일본 책이 있다면 정말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현대 일본 사상가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아즈마 히로키의 책들이 그런 책일 수 있겠다. 그 점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그의 책 대부분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있으며, 모두 13권(단독 저서 기준)이다.
《지(知)의 관객 만들기》, 아즈마 히로키(지음), 지비원(옮김) 메멘토, 2025
아즈마 히로키는 1971년 도쿄 출생으로, 철학자·비평가·작가이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호칭은 모두 붙이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꽤 젊은 나이에 데뷔했으니 말 그대로 '기린아'(麒麟兒)였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만 보고는 서브컬처에 한정된 비평가인 줄 알았으나 그건 아니었다.
게다가 '철학자·비평가·작가'로 만족하지 않고 '겐론'[言論]이라는 지식 기반 회사까지 만들어 경영자로 나선다. 이 책은 그 회사의 설립부터 현재(일본어판이 출간된 2020년)까지 있었던 희망, 배신, 절망, 발견, 기사회생, 안정, 확장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스스로 "'사소설적'이고 '노출광적인' 저작"(232)이라고 우려할 정도로, 부끄러울 수 있는 자신의 부족함까지 남김없이 털어놓는다.
그렇다고 과거를 회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주요 개념인 '오배송'[誤配]1, '관광객'2등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포착한다(이 개념들은 최근에 증보판이 나온 《관광객의 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밝힌 '겐론'의 이상(理想)은 '인디펜던트 얼터너티브 인스티튜트'이다. 그는 일본의 기존 사상지나 문예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 결과물이 '겐론'이다. 겐론은 현재 교육 기관(인스티튜트)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데, "온라인의 오배송 없는 의사소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오프라인으로 가는 입구'='오배송의 입구'로 변모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의식"(119)과 연결된다.
그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의 사상을 물리적 현실과 연결했다는 점이다. 사상과 실천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지 않고, 그 방향도 사상에서 실천으로의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의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을 통해 사상을 보완하는 순환이 이루어진다(《정정하는 힘》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책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혹시나 "어느 철학자의 경영 분투기" 라는 이 책의 부제 탓에 회사의 '경영 철학'을 세우거나 창업에 참고할 만한 책으로 오해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인간적이며 물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고투기(苦鬪記)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신의 메시지가 본래 전달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잘못 전달되어 버리는 것, 원래 몰라도 좋았을 것을 어쩌다 알게 되는 것"(81)
"커뮤니티는 '마을 사람'(친구)도 '외부 사람'(적)도 아닌 제3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이들이 '관광객'"(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