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좋은 소설, 소설가가 참 많은 것 같다
〈창작과 비평〉 2025 가을(209호) 중 소설들
한 해에 등단하는 또는 배출되는 소설가만 해도 수십 명은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나 유력 문예계간지를 통해 등단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통로였던 것 같으나, 지금은 그 경로가 훨씬 더 다양해졌으며 이 등단이라는 과정 자체를 건너뛰는 경우(정보라 작가처럼)도 많은 듯 하다.
그럼 그 많은 소설가들은 계속 소설을 쓰고 책을 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소설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걸까? 소설책은 그나마 다른 책들에 비해 많이 읽히고 팔린다고 알고 있는데, 과연 그런가?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 가면 '베스트 대출' 목록을 볼 수 있다. 8월 베스트 대출 상위 30권 중 한국 소설책은 단 두 권 — 《너의 계절, 나의 날씨》(이신조, 2025)1, 《소설 보다: 봄 2025》 — 이다. 대출 상황은 이렇지만, 여러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소설들 — 《혼모노》, 《안녕이라 그랬어》, 《첫 여름, 완주》 등 — 은 대부분 '대출중'에 '대출예약 초과' 상태이다.
이래서는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읽는지 안 읽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가설 하나를 세울 수는 있겠는데, 베스트셀러에 오르거나 화제성이 높은 소설들을 많이 읽는다는 가설이다.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과 같이 당연한 얘기인가.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튼 독자들이 이런 소설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위험 회피, 다시 말해 넷플릭스 같은 OTT에서 뭐 볼까 한참을 고르다가 결국 아무것도 보지 않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으려는, 결국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본 순위에 올라있는 것을 고르는 결정인 것 같다.
문화상품의 경우에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최근 평론가들이 혹평한 영화 〈좀비딸〉이 예상 밖의 흥행 성적을 거둔 것2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평론가와 대중의 관점이 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어느쪽이 맞다 틀리다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서로 쳐다보는 곳이 다를 뿐.
읽을 소설을 직접 골라보기로 했다. 평론가의 호평, 서점 추천 베스트셀러, 인스타그램 화제성 등에만 의지해 읽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알라딘에서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로 분류된 소설 중 '느낌이 오는' 걸 무작정 고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은 주요 문예계간지 — 일단은 〈문학동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 에 게재되는 소설을 통해 소설가와 그들의 작품을 알아가면서 현재 한국 소설의 지형도를 파악해 나가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창작과 비평〉 2025년 가을호이다.
〈창작과 비평〉 2025 가을(209호), 창작과비평 편집부(엮음), 창비, 2025
이번 호에 실린 소설은 다섯 편(장편연재 1, 단편 4)이고, 모두 여성 작가이다. '여성 작가의 약진' 현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는데, 주목받는 남성 소설 작가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다섯 작가는 신인부터 중견까지 다양하다. 〈사라사 보제이〉를 쓴 공선옥 작가는 1991년에 등단했고, 김소라 작가의 〈낮게 나는 아이〉는 올해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이다.
〈아무래짜〉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장편연재작인 〈온통 부드러운 흰빛〉(백수린 작)과 〈사라사 보제이〉는 인물과 그 감정 들의 섬세한 묘사, 무리하지 않는 서사 흐름에서 중견 작가들의 원숙함이랄까 그런 걸 느꼈다.
특히 〈사라사 보제이〉에서는 등장인물의 시점이 교차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말 한마디 꺼내기가 조심스러워 — 문자로 'ㅋㅋ' 하나 보내는 것도 — 속으로 삼키는 인물들이 서로에게 깊숙이 침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온통 부드러운 흰빛〉의 주인공도 갑자기 입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게 되는데,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 말을 할 수 있어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비된다. 서로 다른 작품임에도, 그렇게 말, 언어는 이 소설가들에 의해 생경한 관점으로 다뤄진다.
신인소설상을 받은 〈낮게 나는 아이〉는 젊은 작가답게 전통적인 개연성은 무시한다. 또는 장르소설의 요소를 가져오는데, 하늘을 나는 아이가 등장한다(내 또 다른 가설 중 하나는, 순수소설과 장르소설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초능력자가 등장하지만 전체 내용을 고려했을 때 이 소설을 SF나 판타지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자극적인 '사고'(事故)의 개입과 지나치게 열린(장편소설의 제1장인 것 같은) 결말은 신인 작가이며 문학상 투고작임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2004년에 등단한 조해진 작가의 〈조립되는 밤〉에는 설치미술가(남자)와 연상의 소설가(여자)가 연인으로 등장한다. 단편임에도 꽤 긴 시간의 경과(연애를 시작한 이십 대부터 다른 여자와 결혼한 후의 중년까지)를 '조립'하는데, 남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감정이 끊김없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덕분에 이 소설이 참고했다는 설치미술가 양정욱 작가의 작품도 구경했다.
이제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 가을호에 실린 소설들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판매포인트(Sales Point)가 고작 434점이다. 뭔가 좀 이상하다.
정부지원 영화 할인 쿠폰 덕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