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정신 수련으로서의 글쓰기
피에르 아도, 《명상록 수업》 (2023) (1)
《명상록 수업》, 피에르 아도(지음), 이세진(옮김), 복복서가, 2023
아시다시피, 지난달부터 스토아주의(Stoicism) 책들을 읽고 있다. 이제 피에르 아도의 《명상록 수업》을 읽고, 세 번에 나눠 글을 써보려고 한다.
책 내용 전반에 관해 설명하기보다는 내가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중심에 두고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지엽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으니 그 점은 감안해 주시길 바란다.
저자 피에르 아도(1922~2010)는 "서양 고대철학 연구의 거장으로 특히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에 관한 정통한 연구로 알려져 있"고, "'정신적 수련'으로서의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분석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며 이는 미셸 푸코가 《성의 역사》를 집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정신적 수련'에 관한 아도의 관점은 이 책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쓰면서 스토아주의 정신 수련을 했"는데, "자기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글쓰기라는 하나의 기술, 하나의 방법을 썼다"고 본다.(78)
글쓰기에 관해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우렐리우스도 일종의 '메모 카드'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는 "라틴어 저술가의 발췌본을 열심히 필사하고"(51), "책을 읽고 발췌문"을 모아두었으나 "더는 지적 호기심이나 사색적 관심만으로 다양한 '메모 카드'를 작성할 여력이 없으므로 글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삶의 본질적인 원칙에 집중하기 위해서 써야 했"고, "발췌본에서 가져온 다수의 인용을 《명상록》 곳곳에 베껴 적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52)
이제 더는 헤매지 마라. 너는 네가 쓴 비망록(hypomnēmatia)도, 고대 로마인과 그리스인의 행적도, 노후를 위하여 남겨둔 그들의 저작 발췌본도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명상록》, III, 14) (51)
그 이후에도 아우렐리우스는 "여전히 자기를 위한 메모와 성찰을 글로 남겼"으니, "《명상록》은 고대에 비망록(hypomnēmata)이라고 불렀던, '그날그날 적어두는 개인적 메모'라고 규정할 수 있는 글쓰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메모의 대부분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권고, 즉 매우 정성을 들여 작성한 자신과의 대화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명상록》을 읽으며 황제가 스스로를 위해 쓴 글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에 더해 당연히 다른 누군가에게도 권고하기 위해 썼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 결과로 그의 글은 '자신의 정신 수련'이라는 맥락에서 분리되어 몇 개의 목록으로 만들어져 소비되곤 한다.
아도가 확실할 것이라 보는 것은,
황제는 자기를 위하여 글을 썼다.
그는 독자를 고려한 통일성 있는 저작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날그날 글을 썼다. 그래서 그의 글은 서판처럼 휴대하기 쉬운 매체에 쓴 개인적 메모 상태로 있었다.
그는 자기 사유, 문장, 성찰을 문학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려고 공을 들였다. 그 문장의 심리적 효과와 설득력은 표현의 완벽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56)
이와 관련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오로지 자기를 위해서 글을 썼기 때문에" 내용 전체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에픽테토스의 조언"에 따라 "도그마와 삶의 규칙을 언제나 염두에 두기 위해서 글을 썼을 뿐이다"(76). 그의 글이 경구(警句)처럼 짧고 간결하게 쓰여진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 "《명상록》은 다시 읽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쓰는 것, 쓰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 곧바로 글을 쓰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고, "언제라도 다시 꺼지거나 고사할지 모르는 내적 상태를 다시 깨우고, 북돋우고,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스토아주의 정신 수련으로서 "그날그날의 글쓰기 수련"(78)을 한 것이다.
고대 로마의 "교양인, 특히 철학자들은 정보 수집을 위해서, 또한 자기 수양과 정신적 발전을 위해서 이렇듯 개인적 용도의 메모를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던 같다"(53-54)고 한다. 당시의 "철학자는 이론적인 철학교육을 받은 자나 철학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향을 하고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양식을 공언하는 자였다"(18)고 하니, 어찌보면 종교인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그들에게 매일매일의 메모와 글쓰기가 일종의 정신 수련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현대에도 글쓰기를 일종의 치유나 명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있지만, 삶의 태도로서의 정신 수련으로 여기는 관점은 흔치 않은 것 같다. 현대인의 정신에는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기표현으로서의 글쓰기라는 관점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의 원칙을 위해 "언제라도 다시 꺼지거나 고사할지 모르는 내적 상태를 다시 깨우고, 북돋우고,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기술로서의 글쓰기도 가능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