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일기 쓸 용기
김구용, 《구용 일기》 (2000) 외
너무 덥다. 에어콘으로는 식히지 못하는 더움이 있다.
김구용 선생의 《구용 일기》를 읽고 있다. 일기는 1940년 2월 24일부터 시작하는데, 구용 선생이 1922년생이니 18살 때다. 아직 1940년대 읽기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옛날 사람의 삶과 글을 별 기대 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이어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생각날 때마다 띄엄띄엄 펼쳐 읽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18세의 구용 선생은 속이 깊어서 내가 18살 때는 어땠는지 떠올리게 만든다. 읽어 갈수록 책 속의 선생은 빠르게 나이를 먹어 나를 지나쳐 갈 것이고 주마등처럼 변해갈 것이다. 다른 이의 일기를 읽는 재미다.
작가들의 일기는 책으로 꽤 많이 나와있다. 일기의 전제 조건인 사적이며 비밀스러움은 유명인들에게는 예외인 것 같다. 주로 그들의 사후에 출간되는데, 고인들이 알았다면 흔쾌히 동의했을지 궁금하다.
일기 책은 대부분 두껍다. 《구용 일기》는 904페이지, 아직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카프카의 일기》는 944페이지, 《울프 일기》는 628페이지다. 이 책들을 읽으려던 초심을 되짚어보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면모가 궁금했다. 그들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는 것으로 연결될지 말지는 부차적이다. 다시 말해, 그 작가들도 인간이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게 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위대한 작품은 있어도 위대한 작가는 없다고 우기고 싶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읽고는 싶지만 절판 상태여서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일기가 있는데,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다. 벤야민 역시 인간임을 확인하고 싶은 인물이다.
며칠 전에 김대중 대통령의 《김대중 망명일기》가 출간됐다. 책소개에 따르면,
이희호 여사 서거 후, 3남 김홍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동교동 사저에서 여섯 권의 수첩을 발견했다. 이 수첩에는 1972년 8월 3일부터 1973년 5월 11일까지 김대중이 자필로 쓴 일기 223편이 기록되어 있었다. 1973년 8월 8일 김대중이 도쿄에서 납치되기 전까지 일기를 계속 썼다면 두 권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 행방은 알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게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한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인간이다. 그의 인간적 풍모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유신 독재를 피해 망명까지 해야했던 극단적 상황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남겼을지 궁금해 마지 않는 바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의 일기를 읽기만 하고 나는 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누군가가 너 꽤씸하다며 잡아가지는 않겠지만,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을 전제로 쓴다는 것은 이제 좀 낯선 각오가 되어버린 것 같다.
소셜미디어든 메신저든 이제 우린 모든 글을 쓸 때 수신자를 떠올린다. 잘 쓰든 못 쓰든 각자의 글쓰기 전략이 있다. 흥분한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트위터에 올리든, 24시간 후면 사라질 사진을 알듯 모를듯한 캡션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리든, 부러 맞춤법을 틀려가며 카톡 메시지를 보내든 수신자의 관심을 끌어보려 애쓴다.
일기는 어떤가. 일기조차도 누군가 읽을 것을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쓴다고는 하지만 현시점 가장 고독하며 순수한 글쓰기 형식이 아닐까.







나이 탓도 있겠지만(ㅋ) 심신이 한 번 꺾인 특정 시점을 기해서 온라인에 무엇인가 남기는 게 그렇더라구요. 더구나 거의 모든 오프라인의 관계랄 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특히나. 뭐 그런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건지 이걸 또 아주 딱 끊지는 못하는 게 참.. 어째 술담배 끊는 것보다 힘들데요. 최소한의 숨구멍 같은 건가 싶기도 하고. (구)독자 고려 전혀 하지 않는 일기도 한동안 못 썼어요. 아직도 책장 두어 칸을 차지하고 있는 지난 일기장 등을 어쩌나 싶어요. 나중에 내가 봐도 못 알아볼 이야기로 쓰자니 그러면 굳이 이렇게 물리적 공간 채워가며 써재길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있고.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업노트에 툭하면 쏟아 붓고 있어요. 일단 쏟아 붓고 좀 정리가 필요할 땐 다시 들춰보는 식. 하여간 나무에게도 미안하고 <공각기동대>에서 네트워크는 광대하다고 했던가 내가 온갖 쓰레기를 버려댔던 것 같아 미안하고 .. 뭐 그렇게 삽니다. 울프든 누구든 작가의 일기도 일상보다 서평이나 작품 활동에 맞춰진 게 아니면 잘 안 들추게 됐어요. 여러모로 … 그렇게 됐어요. (이 장황한 코멘트 또한 네트워크의 쓰레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