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죽음은 항상 모순과 함께 나타난다
장 아메리, 《자유죽음》 (2022)
《자유죽음》, 장 아메리(지음), 김희상(옮김), 위즈덤하우스, 2022(개정판)
Jean Améry, Hand an sich Legen: Diskurs über den Freitod (1976)
《늙어감에 대하여》(19호)를 쓴 장 아메리의 또 다른 책이다.
많은 대목에서 혹시 내가 여기서 자유죽음을 옹호하는 변론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오해가 생겨날 수 있다. 그 같은 오해는 단호히 말해두지만 삼가주기 바란다. (…)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의 상황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역설적인지 아는가. 나는 다만 '자살 상황(condition suicidaire)'이라는 쉽게 풀기 힘든 모순을 따라가 보고 그게 어떤 것인지 증언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언어의 힘이 닿는 한. (12-13)
죽음은 항상 모순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도 모순도 인정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며 보내는 말은 하나같이 다음 생 또는 다른 곳을 가리킨다. 나는 이것이 종교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내세(來世)에 대한 확신이나 희망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닥칠 "미래의 차단", "없음, 아무것도 아님, 철저한 무(無)"(37)로서의 죽음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의심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하루 평균 약 35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0∼30대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 자살이 사회에 미치는 부담은 여러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쓰이는 건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이다. — 〈연합뉴스〉 (2025.7.16)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가 냉혹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자발적으로 인생의 고리를 끊고 나가겠다고 해서 필요 이상의 과열된 관심과 근심으로 소동을 떠는 이중성으로는, 인간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사회의 소유물인가?(172) (…) 오늘날 공공질서의 수호자로 임명받은 사회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등의 행태를 보라. 자유죽음을 무슨 몹쓸 병처럼 취급하지 않는가. 자살을 다루는 사회의 모든 이론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잠재적인 '자살자'가 그 뜻을 자유죽음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을 막으려 혈안이 된다. 이들은 말한다. 생명은 유일한 자산이라고! 어떻게든 지켜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내세워지는 이유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178)
예상되는 바이지만, 이 책이 출간된 후 자살을 옹호한다는 비난과 논쟁이 잇따랐다. 50년이 지나도 그 논란은 여전한 것 같지만, 나로서는 그 비난에 별 관심이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위한 선택으로서의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관한 논의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 속하는 존재"(181)임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진실은, 사회는 사회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따라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우리는 개인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사회의 요구를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리라. 이런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오로지 하나다. 곧 모순은 우리의 존재를 지워버려야만 비로소 사라진다. '현실', 즉 무수히 많은 생각의 균형을 잡아 각 개인의 공감을 얻어낸 것으로 말해진 현실은 거부할 수가 없다. (209)
"개인이 사회의 소유물"은 아니지만 눈 앞에 있는 그 '현실'을 무시한 채로는 이 모순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지난달 부산에서 10대 고등학생 세 명이 함께 투신 — 나 스스로도 이런 일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편치 않다. 미디어에서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일부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 들은 이 단어가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며 극구 반대한다. — 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셋이서? 그러나 둘이었다면 덜 충격적이었을까?
"하루 평균 35명"이 자살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한국. 각자의 방법으로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 심지어 AI를 이용하자는 —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척 살아가고 결국 죽음에 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도 없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되는 것은 아닐까.
장 아메리는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자유죽음을 선택했다. 모순은 해결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으로 우리를 떠나간 사람 앞에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로 머리를 숙이고 왜 우리를 버렸냐며 조리 있게 따지는 일이다. (2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