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하루 지난 형이자 친구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보냈다. 역시나 '공격적' 농담이란 껍질을 하나 뒤집어 써야 통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 받고1, 우리 세대의 문화에 맞게 전화 통화로 마무리했다. 나보다 고작 두 살 많지만 대학 때부터 형이라고 불러주고 있는데 — 오십 대가 좋을 때다, 뭐 그럴 수도… 같은 말을 주고 받았다.
그렇다면 오십 대는 정말 좋을 때일까? 그건 같은 오십 대끼리나 주고 받을 수 있는 위로 또는 좋은 때로 만들겠다는 각오 또는 지금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선언 같은 것 아닐까? 물론 오십 대의 모든 사람들이나 오십 대라는 연령대를 객관적이고 획일적으로 평가할 방법은 없다. 다만 당사자로서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장 아메리(지음), 김희상(옮김), 돌베개, 2014
Jean Améry, Über das Altern (1968, 1977)
저자 장 아메리의 이력은 비현실적이다. 1912년 오스트리아 빈 출생, 1938년 벨기에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1943년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고문 당하고, 유대인으로 강등되어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전쟁이 끝난 뒤 브뤼셀에 정착하여 작가로 활동하다, 1978년 한 호텔에서 '자유죽음'을 선택했다.
원래 계획은 《죽음의 부정》과 주제의 연속성을 고려해 《자유죽음》을 먼저 읽으려고 했으나 이 책 《늙어감에 대하여》가 그 전편 격이어서 먼저 읽기로 했다. 늙은 후에 죽는 것이 (보기에는) 자연스러울테니 말이다.
아메리가 다루고자 하는 물음은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이고, 책도 이 순서로 진행된다.
책의 논의는 굽이굽이 이어져 한번에 이해하긴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아메리가 "모순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로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나가며, 되도록 주관적인 것 이상의 글을 써보려 노력했"고, "객관성이나 주관들이 합의를 이뤄낸 일종의 타협 같은 것은 의식적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서문의 제목처럼 "저항과 체념의 모순을 탐색하는 여정"이고, 한 단어로는 '모순'이다.
그 모순은 이렇게 표현된다.
아무런 전망이 없는 부정에서만 노인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
노인은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안에 녹아 있는 부정이 자기 문제임을 알아차리고 그에 저항하려 몸을 일으킨다. 노인은 실행할 수 없는 일을 하려 과감히 떨쳐 일어난다. 아마도 이게 노인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 진정 품위 있게 늙어갈 유일한 가능성이다. (131)문화적으로 늙는 일의 품위는, 그것이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사회적 노화의 품위와 마찬가지로 다시금 오로지 모순된 저항, 모순과 철저히 싸우는 저항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 다시 말해서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무망한 시도로 자신의 부정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거부해야만 한다.
(...)
그가 이해하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 그는 영웅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일 뿐이다. 그리고 늙어 죽어가는 모든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영웅적이다.2(169-170)
이런 모순은 결국 죽음 때문에 생겨난다. "죽음은 애초부터 우리 안에 숨어서 애매함과 모순이 생겨날 여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94) 이 모순에 관해, 어니스트 베커는 《죽음의 부정》에서 심리학을 통해 파헤쳤다면, 아메리는 "'살아본 구체적 경험'만을 철두철미하게 고집했"고(6) "'성찰'이라는 방법"과 "주의 깊은 관찰과 공감 능력"(7)을 통해 파헤쳤다.
모든 인간의 인생에는 자신의 현재 상태가 어떤 것인지 발견하게 해주는 일종의 점과 같은 시간이 있다. (...) 돌연 당사자는 세계가 그에게 미래의 신용을 더는 인정해주지 않으려 하는, 아예 미래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으려 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니까 달라질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 아무도 그에게 '앞으로 뭐 할래'하고 묻지 않는다. (...)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걸 이미 했잖아!'하고 등을 돌린다. (99-100)
아메리가 이 책의 초판을 출간한 해는 1968년으로 그가 56세일 때인데, 육체적·정신적 노화의 과정과 상태에 관해 이렇게 상세히 분석한 것이 놀랍다. 오십 대 초반의 나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조금 이른 나이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읽으며 했다. 아직 그 저항과 체념의 모순이 저멀리서 몰려오는 경고음만을 들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화, 늙음 등에 관해 나온 많은 책들처럼 "늙어가는 사람들이 언제나 바랐던 희망, 곧 위로해주었으면 하는 기대"(7)를 만족시켜주는 책이 아니다. 말했듯이, 나를 모순으로 가득 채울지도 모르는 책이다. 아니, 이미 내가 모순이었음을 발견하게 만드는 책이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참조.
《죽음의 부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젊은 날에 50대 선배들을 보며 저 나이에 아직도 아집과 욕심이 있다니 하며 미워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를 반성하기 딱 좋은 시기다, 요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