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요즘 쓰는 독서 카드
마음에 쏙 들고, 정리가 즐겁다
〈노상기록〉의 최종 결과물은 뉴스레터라는 디지털 형태이지만, 사전 작업은 모두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고 있다. (디지털 vs. 아날로그라는 이분법도 탐탁치 않고, '아날로그'로 의미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에 이 단어를 쓸 때마다 불만스럽다. 그렇다고 '수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발로 쓴 글들은 어떻게 하라고.)
먼저, 책은 종이책으로 읽고 있다. 한때 책 보관 공간을 아끼기 위해 자기계발, 실용서 등은 전자책으로 보려고 했었지만 이것도 습관인지 전자책을, 다운로드만 받아놓고 읽지 않는 PDF 파일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이책은 눈 앞에서 계속 얼쩡거리며 시비를 걸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루이틀 날잡고 맞짱 뜨고 나면 누가 이기든 속이 시원하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효과적인 학습법은 아니라고 하지만, 책이 반질반질한 낯짝 그대로 돌아가는 건 용납할 수가 없다), '이건 꼭 정리해야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스티커를 붙인다. 다 읽고나면 스티커를 붙였던 내용 위주로 A6 독서 카드에 정리한다.
그닥 까다롭진 않은데, 내가 원하는 카드 종이의 조건은 이렇다.
선이나 점이 인쇄되지 않은 무지(무선) — 자유도가 높아서 좋아한다. 이제 유선 노트는 답답해서 못 쓴다
4x6인치 또는 A6 크기 — 제텔카스텐의 영향이 크다. A5나 A4는 단일한 원자적(atomic) 내용을 담기에는 너무 크다. 뒤섞고 재정렬하고 펼쳐놓고 보기에 딱 좋다. 반면 3x5인치 카드는 너무 작다.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두께 — 너무 두꺼우면 쌓였을 때 보관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손으로 다루기에 불편하다(트럼프 카드가 너무 두껍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다고 일반 노트처럼 얇으면 흐느적거려서 역시 불편하다. 그리고 주로 만년필로 쓰기 때문에 너무 얇으면 뒷면(어차피 쓰진 않지만) 비침이 심하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진다. 100g/㎡ 내외의 평량이 적당한 것 같다.
무코팅, 무광택 종이 — 코팅이 되어 있으면 역시 만년필로 쓰기에 좋지 않다. 흡수가 잘 안 돼서 번지거나 묻는다. 또 안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종이에 빛이 반사돼서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거다. 잡지 같은 것을 볼 때도, 물론 사진이 잘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빛이 반사돼서 사진이고 글씨고 잘 안 보이면 또 기분이 안 좋아진다.
잉크가 번지지 않는 종이 — 두께가 두껍고, 무코팅이라고 해서 다 잉크가 번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종이의 특성에 달려있고, 써보는 수밖에 없다.
구멍이 뚫려있지 않은 카드 — 지금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독서 카드류는 주로 모닝글로리에서 만드는데, 거의 다 고리를 낄 수 있는 구멍을 뚫어놓았다(그리고 대부분 유선이다). 내게는 무용하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카드를 찾기 위해서 좋다는 카드는 거의 다 써본 것 같다. 한국의 각종 문구 브랜드, 미국 아마존, 일본 아마존 등에서 구입해서 말이다. 그 결과 미국 아마존에서 산 카드를 한동안 썼는데,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았다(한 80% 만족?).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종이인 미도리 MD코튼 노트를 A6 크기로 잘라서 써보는 것도 생각했는데, 그걸 언제 자르고 있나 싶기도 하고, 자투리가 많이 남고, 막상 잘라보니 절단면이 깔끔하지 않고 살짝 말리는 현상이 있어서 잊기로 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원하는 종이를 원하는 크기로 재단해주는 업체들이었는데, 역시 을지로 주변에 많았다. 이런 서비스 역시 온라인 업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잘 찾아보니 〈신식상점〉 이란 곳이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모든 종이를 써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주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선 다이어리에 많이 쓰거나 쓰면 좋은 종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다이어리 종이이기 때문에 만년필 잉크에 대한 고려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몇 개의 종이 후보를 들고 두성종이에서 운영하는 을지로 '인더페이퍼'에 갔다. 후보 위주로 두 세 평량별 전지 한 장씩, 현장에서 괜찮아 보이는 종이들도 전지 한 장씩, 샘플북 세 권 등을 사왔다.
집으로 돌아와 전지들을 A6 크기로 자르고, 만년필로 썼을 때 잉크와의 상호작용은 어떤지, 손에 들었을 때 느낌이 좋은지, 너무 흐느적거리지는 않는지 등을 확인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결정한 종이는 문켄 프린트 크림 90g. 평량이 90g임에도 잉크가 거의 비치지 않았다. 무코팅지여서 살짝 펜과 마찰이 있는데 난 이걸 좋아한다. 미끄러우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펜이 갈 때가 있는데, 그러면 역시 기분이 안 좋아진다. 다만 '거미줄 현상'이라고 해서 잉크가 아무 미세하게(돋보기로 봐야 보일 정도로) 종이의 섬유질을 따라 번지는 현상이 있는데, 난 이것도 좋아한다.
아무튼 종이를 정했으니 신식상점에 가서 A6 사이즈로 재단 주문하면 가격이 얼마인지 확인해봤다. 최소 수량은 전지 50장이고, A6로 만들면 2,500장이었다. 이렇게 주문했을 때 배송비 제외하면 3만원 정도였다. 장당 12원 꼴이니 충분히 사용할만한 가격이다. 2,500장이라고 해서 부피가 너무 크면 어쩌나 싶었는데, 막상 받아보니 30cm 정도의 박스에 가득 찬 정도였다. 적당한 두께를 선택하길 잘했다 싶었다.
그래서 요즘 카드를 쓸 때 매우 즐겁다. 웬만한 필기는 카드에다 하기 때문에 노트는 작은 크기 한두 개만 쓰고 있다. 노트도 할 얘기가 좀 있는데 다음 기회에 써보기로 한다.



카드 보관은 어떻게 하세요?
요즘 여러모로 정리 중인데 .... 카드를 쓰는 편도 좋겠다 싶네요.
늘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