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실망감
정보라, 《너의 유토피아》 (2025)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지음), 래빗홀, 2025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는 환상호러 소설집이었던 전작 《저주토끼》(62호, 2025.9.1)와 달리 SF(과학소설) 소설집이다. 2025년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SF 문학상 중 하나인 필립 K. 딕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한국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 책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원래 2021년에 《그녀를 만나다》(수록 작품 중 하나로,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책인데, 2025년에 역시 수록작인 〈너의 유토피아〉를 제목으로 한 개정판이 출판사를 바꿔서 나왔다. 영문판의 제목도 《Your Utopia》이다.
정보라 작가는 ‘좋은 사람’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뛰어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성실하다. 그가 번역한 책들은 수십 권1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어떤가? 《저주토끼》를 읽은 후 느낀 석연찮음(68호 참고)은 해소되었을까?
《저주토끼》에 비해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힘은 좋아진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고집하고 있는 방식 또는 단점은 여전하다. 이 방식을 공포 영화의 클리셰인 ‘점프 스케어’(jump scare)에 비유하고 싶은데, 즉 “관객을 갑작스럽게 놀래켜 무섭게 하는 것을 의도하여 주로 무서운 큰소리와 함께 이미지(영상)나 사건을 갑자기 변화시키는 기술”2처럼 별다른 단서나 맥락 없이 갑자기 비밀이 드러나며 이야기가 끝나는 식이다.
《저주토끼》는 이 점프 스케어식의 단편들이 대부분이었다면, 《너의 유토피아》는 그렇지 않은 편들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서는 또 다른 단점이 발견되는데, 이런 식이다. 작가에게 하나의 독특한 아이디어 그리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작가는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 서사를 만들어 가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직선적이며 변화를 겪지 않는다. 등장 인물 간의 상호작용도 평면적으로 이루어져 흥미롭지 않다. 결국 앞에서 말한 그 독특한 아이디어는 점프 스케어식으로 결말에서 튀어나오거나,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이야기가 재밌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메세지가 서사적 기법을 통해 암시되거나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그녀를 만나다〉의 경우, 추모가 창작 목적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에 넘어간다 해도 다른 몇 작품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혹시 그가 펄프 픽션처럼3 빠르게 만들어 빠르게 소비되는 방식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수준의 완성도와 그의 다작(多作)의 상관관계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나는 정보라 소설의 팬이 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무리 훌륭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내가 SF를 너무 오랜만에 읽었고, 또 최근 SF의 경향을 모르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만약 최근 유행하는 한국 SF들이 이런 경향이라면 읽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나를 SF에 집착하게 만든 필립 K. 딕(PKD), 윌리엄 깁슨의 작품을 읽는 것이 최선 아닐까? 이미 집에는 다 읽지 않은 PKD 선집이 있고, 깁슨의 책도 여럿 있으니 그쪽이 훨씬 나은 선택인 것 같다. 한 한국 SF 작가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씁쓸하긴 하지만, 이른바 세계 3대 SF 문학상 중 하나에 후보로까지 오른 소설이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부디 내 식견이 짧아 잘못 평가한 것이길 바란다.
어떤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시도이긴 했지만, 《저주토끼》와 《너의 유토피아》로 장서인까지 만들었으니 정보라 작가에 대해 무작정 ‘비난’한 것으로 비쳐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보라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저주토끼》의 서문에 자신의 소설은 재미를 위한 ‘장르소설’임을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