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폴 리쾨르
이양수, 《폴 리쾨르》 (2016)
나는 '꿈'을 좋아한다. ‘희망’이나 ‘이상’이 아니라 자면서 꾸는 꿈 말이다. 어떨 땐 꿀 꿈이 기대돼서 잠을 잘 때도 있다. 오늘 아침에는 여러 사람과 이야하기하는 꿈을 꾸다 깨면서 어떤 '느낌'이 남아있었다. 꿈 속에서 어떤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는 이해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는 (다들 느껴봤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모두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지 않나. 가령,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단군 신화'와 관련된 것을 얘기할 때 충분히 얘기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다. 맥락 없이도 '쑥과 마늘'을 결합해 얘기하면 '사람 되기'가 바로 떠오른다. 이렇게, 공동체가 하나의 의식(意識)처럼,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폴 리쾨르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폴 리쾨르》, 이양수(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폴 리쾨르(Paul Ricœur, 1913~2005)의 저작을 읽어나가기 위한 준비운동 격으로 읽은 《폴 리쾨르》는 10개의 키워드 — 실존, 정황적 자유, 의지의 현상학, 악, 해석과 텍스트, 포에틱 미메시스, 전통과 혁신, 자기 정체성, 기억과 망각, 정의로움 — 로 정리되어 있다. 저자인 이양수씨는 '리쾨르의 정의 개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정치철학과 윤리학을 전공했다고 한다.1
이 책의 어디부터가 리쾨르의 사상이고 어디까지가 저자의 해석과 '오독'인지는 리쾨르의 저작을 읽으며 확인해 나가야 하겠지만, 여기서 알게 된 그의 사상은 나에게 '선물' 같았다. 왜냐하면 그동안 품고 있던 철학적, 사상적 관심주제 — 실존, 자유, 죽음, 해석학, 현상학, 시학, 정체성, 공동체, 기억, 도덕, 윤리, 정의, 정치 — 그리고 앞으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 — 텍스트, 내러티브, 문학 — 에 관한 총체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있고, 이 다양한 주제들이 일관성 없이 나열된 것이 아니라 중심축을 갖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 중 '삼중 미메시스 이론'만 짧게 요약 인용해 보겠다.(73-79)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이론을 바탕으로 내러티브의 철학적 기반을 탐구함
삼중 미메시스 이론은 내러티브2가 관련되는 세 가지 지점과 역할을 강조함
미메시스 1: 내러티브와 현실
'전-형상화' 단계
현실 재현을 통해 기존 관점과 가치를 반영하고, 새로운 의미로 전환시키려는 단계
미메시스 2: 내러티브와 텍스트 구성
'형상화' 단계 — 내러티브의 본질적 기능
문장의 연결을 통해 행동의 연관 관계가 형성되는 단계
이야기의 힘은 행동과 행동의 연결 고리, 특히 필연적이고 개연적인 연결 고리에 달려 있음
텍스트의 '이중적 지시(split reference)': 있는 그대로의 현실 & 내러티브로 구성된 텍스트의 세계
미메시스 3: 텍스트 내러티브와 독자의 관계
'재-형상화' 단계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 나타남
독자의 능동적 개입을 전제로 한 자기 수용의 단계
'전유' 또는 특정 메시지의 '자기화' 단계
과학적 설명과 역사적 해석의 과정 개입됨
미메시스 순환은 인간 정신의 소통 과정이며 확장 과정
리쾨르의 저서와 이차문헌은 한국어판으로도 많이 나와있는데, 그 중 《시간과 이야기》를 읽기로 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1999년에3 모두 세 권으로 출간했는데, 합해보니 1,404페이지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밤에 인왕산 수성동 계곡 산책 중, 물소리가 좋아서.
그에 관해 검색해보니, 이상하게도 이 책이 출간된 2016년 이후로는 논문이나 책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내러티브'란 단어와 문장의 적절한 배열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을 총칭한다."(70)
세기말에 나온 책이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판매되는 것을 보면 대형 출판사의 역할도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