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리 알았다면 회사가 좋아졌을까?
도날드 쇤, 《전문가의 조건》 (2018)
이 책을 읽는 내내, 과거에 다닌 회사들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서 힘들었다. 화가 치밀었다가, 반성하면서 의기소침해졌다가,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떠올랐다가, 뭐했나싶어 부끄러웠다가 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자주 화가 난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이 《전문가의 조건》은, 제목만 보면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과 혼동될 수 있으나 자기계발에 관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프로페셔널"을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분량은 330여 페이지 밖에 되지 않지만 논증이 깊고 넓다. 이해와 기억을 돕기 위해 핵심만 도식화해서 정리해보겠다.
《전문가의 조건: 기술적 숙련가에서 성찰적 실천가로》, 도날드 쇤(지음), 배을규(옮김), 박영스토리, 2018
Donald A. Schön, The Reflective Practitioner: How Professionals Think In Action (1983)
극복해야 할 대상은 실증주의의 유산이자 전통적 지식관인, 기술적 합리성 관점에 기반을 두는 전문가 지식 모델이다. 이 전문가들이 활용하는 지식 체계의 특징은 이렇다.(24)
전문화
확고한 경계
과학적
표준화
"지식이 근본적이고 일반적일수록 지식 생산자의 지위는 더 높아"(25)지고, "연구자와 실천가의 역할이 구분"(27)되는데, 이 지식 체계는 다음과 같은 위계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토대 학문 또는 기초 과학 요소 > 응용 과학 또는 엔지니어링 요소 > 기능과 태도 요소
그러나 "대중들의 분노, 사회로부터의 비판, 전문가 자신의 불평 등 전문직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그동안 전문가들이 독점해온 지식의 배타적 소유권, 사회에 대한 통제 권리는 도전을 받고 있다."(11) 그 이유는,
전문가들이 더 이상 자신들이 지지하는 가치와 규범에 따라 살지 않고 있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효과적인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
이 부분에 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작금의 현실을 통해 충분히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 Charles Reich, 13
전통적인 관점의 전문성은 불확실성, 불안정성, 독특성, 가치갈등 상황(50)을 해결하지 못한다. 이제는, 항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르치기 어려운 실천적 기예(art)(19)를 갖춘 성찰적 실천가가 필요하다. 이 성찰적 실천가의 특징은 이렇다.
고객과의 성찰적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전문성이 지닌 한계를 발견하려 노력(282)
자신이 보유한 특별한 지식을 고객과 상호작용 행위 속에서 발휘하는 능력으로부터 권위 나옴
실천가에게 열려있는 만족은 대개 발견으로 인한 만족임. 즉 고객을 위한 조언의 의미 발견, 새로운 실천지의 발견, 자기 자신에 대한 발견에 따른 만족(284)
실천 활동 그 자체는 자기 쇄신과 발견의 원천이 됨
전문가와 성찰적 실천가의 차이는 이렇다.(285)
이어서, 인간관계 행위 이론 모델을 이용해 전문가와 성찰적 실천가를 비교해보자(이 글에서는 이 둘의 차이를 확실히 해두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Model I 행위 이론: 전문가 (221-222)
가치 추구
내가 스스로 설정한 과업은 완수해야 한다
타인과 승자독식 게임을 한다면, 반드시 승리하도록 노력하고 패배는 피하도록 한다
분노 혹은 후회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자제한다
"냉정을 유지하고, 설득적이고, 합리적 논증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이성적
행동 전략
과업을 주도적으로 실행
그런 행동이 필요한지를 검증해 볼 필요 없이 전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
보호받기를 원하는지를 검증해 볼 필요 없이 전적으로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숨기면서 상황을 주도하려는 봉인과 지배(mystery and mastery) 전략 이용함 — 그 자체가 성찰에 영향 받지 않는 모종의 실천지 시스템에 갇혀 있음.(224)
Model II 행위 이론: 성찰적 실천가 (225-226)
가치 추구
타당한 정보를 교환
관찰이 가능한 데이터와 정확한 보고서를 찾아서 타인에게 제공함. 그렇게 함으로써 원인 발생의 타당한 근거 제시함
자유롭고 지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 조성함
개인적 이해관계, 자신 능력의 한계, 상대방에 대한 통제 욕구로 초래되는 방어 메커니즘으로부터 탈피하여 상호이익을 위한 영역이 존재함을 인식하려 노력함
이미 결정된 사안들에 대해서는 내적 헌신도를 높임
외적 보상이나 처벌 때문이 아니라 내적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헌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 노력함
행동 전략
공동 과업을 설계하고 공동 과업 환경을 조성해서, 관련 당사자들이 자유로운 선택과 내재적 헌신을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함
자신과 타인의 보호를 공동 활동의 접점으로 삼음
직접 관찰 가능한 것들에 대해 발언함. 즉 자신의 추론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제시하여 추론에 대한 반박의 여지를 제공함
개인적 딜레마가 의존하는 가정들에 대한 공개적 검증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개인적 딜레마는 겉으로 노출시킴
성찰적 실천가를 지향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저자도 잘 알고 있고, 다양한 문제와 부작용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찰적 실천은 전문성의 탈신화화에 기여한다. 성찰적 실천은 전문가와 반전문가(counterprefessionals) 모두에게 특정 지식이 인간을 위한 가치와 이익을 위한다는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해"주고, "불확실성, 불안정성, 독특성, 갈등 상황에서 기능적 전문성이 무력하다는 점도 깨닫게 해준다."(326)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예외적 지식 소유권은 허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전문가가 지닌 전문성이라는 신비주의 이면에는 대중의 무지를 이용하여 조종하려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진적 비판 논리에는 사회 개혁을 위한 유토피아적 비전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 평등, 사회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합리성으로 은폐되고 있는 계급 이익을 드러내어서 전문직의 허구성을 폭로할 필요가 있다.(322)
그러나 "조직 학습 역량을 갖춘 개인은 기능적 전문성 발휘가 요구되는 안정적 규칙과 절차 시스템으로서의 조직에 대해서 위험 인물이 되기도 한다."(312) 이걸 알았던 사람들은 그래서 반대로 행동했던 걸까?
다음에 읽을 책은 앤 카슨의 《에로스, 달콤씁쓸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