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투명성은 속임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012, 제2판)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지음), 천병희(옮김), 숲, 2012(제2판)
《명상록》은 읽을수록 의심스러운 책이다. "언뜻 보기엔 독자가 난해해할만한 책이 아니다". 아우렐리우스 "스스로 말하기 때문에 아무런 설명이 필요치 않"고, "특정한 아포리즘"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야말로 "투명"하다.1 스토아주의가 현대 사회에서 위안 또는 대안으로 '유행'하게 된 것은 이 "투명성" 덕이 클 것이다.
가령, 이런 내용은 삶의 욕망과 혼란을 단숨에 가라앉힌다.
맛 좋은 요리나 그와 비슷한 다른 음식들을 보고는 이것은 물고기의 사체이고 이것은 새나 돼지의 사체라고 생각하고, 팔레르누스산(産) 포도주를 보고는 이것은 포도송이의 액즙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자포(紫袍)를 보고는 이것은 조개의 피에 담갔던 양모(羊毛)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성교(性交)라는 것도 장기의 마찰과 진액의 발작적인 분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그런 생각은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건드려 그 사물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볼 수 있게 해준다. 너도 평생 동안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이 너무 믿음직해 보이거든 옷을 벗겨서 그것의 무가치함을 꿰뚫어보고 그것이 뻐기는 후광을 걷어내야 한다. 가식(假飾)은 무서운 사기꾼이다. 그리고 네가 진지한 것을 상대하고 있다고 굳게 믿을 때 가장 현혹되기 쉽다. (88-89)
그런데, 우리는 1,800여년 전 로마 황제가 비망록(이라는 형식 규정도 의심이 가지만)에 쓴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 삶의 지침으로 참고해도 괜찮을까? 피에르 아도의 말처럼 이 "투명성은 속임수"2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명상록》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책의 초반에는 꽤 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으나 뒤로 갈수록 밑줄보다 물음표가 많아지고, 의심이 쌓여갔다. 그의 아포리즘을 지탱하는 "신"과 "자연"을 신뢰할 수 없었다.
아무쪼록 이 의문들이 피에르 아도의 《명상록 수업》을 통해 일부라도 해소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스토아주의 읽기 순서를 바꿔야할 것 같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제1부 '희랍 철학' 5장 '지혜로운 인간의 이상'《명상록》, 천병희(옮김)피에르 아도, 《명상록 수업》
《에픽테토스 강의》, 김재홍(옮김)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중 ‘루크레티우스를 찾아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 김재홍(옮김) (선택)
권위에 올라탄 단언(斷言)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이 뒤를 좇고 있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스토아주의 읽기가 실패(또는 성공으로 판가름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로 끝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부디 내 의심과 실망이 섣부르고 어리석은 판단이길 바라며, 스토아주의에서 뭔가 발견할 수 있기를 빈다.
襄陽好風日 留醉與山翁(양양호풍일 류취여산옹)
양양, 바람도 볕도 좋으니
산 속 늙은이 곁에 머물며 흐드러지게 누려야겠다
— 왕유, 〈漢江臨眺〉(한강에 배 띄우다) 중
(노상기록 49호 참고)
피에르 아도, 《명상록 수업》, 5-6
피에르 아도, 같은 책, 6




오호~~ (의미없는 감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