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물회, 구름, 솜사탕
여름휴가의 쓸쓸함에 대하여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7월말에서 8월초에 주로 가는 이유를 잘 이해 못했다. 차 막히고, 가는 곳마다 붐비고, 성수기 요금에 시달리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거래처, 협력처와 함께 쉬어야 하는 회사도 있고, 직장 상사 눈치가 보이면 다 같이 쉴 때 쉴 수밖에 없고, 자녀들 방학 기간도 고려해야하니 가장 더운 이때쯤이 '휴가철'로 굳어진 것 같다.

기록적 폭염도 이십사절기의 순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지 입추가 지나고 나니 밤 온도가 이십 도 대로 떨어졌다. 휴가를 보낸 동해안은 흐린 한낮에는 이십 몇 도쯤일 때가 있었다. 고성의 거의 북쪽 끝까지 올라가니 그곳은 더 시원했다.

매년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면 쓸쓸함을 느낀다. 이젠 더위 때문에 괴로움이 더 큰 여름이지만, 즐거웠던 시간을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아직 한참 남은 가을을 준비해야 한다고 무의식 속의 시계가 재촉하는 것 같다. '내 나이도 가을 어디쯤 아닐까'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쓸쓸함과 씁쓸함이 겹치지만 지금까지 얻은 지혜가 있다면 '지금에 집중한다'는 것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지혜가 삶의 모든 측면에 발휘되는 것은 아닌데, 지금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도는 모임이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를 지침으로 하는 글쓰기 모임, 두 번째는 오십 대 이상 남자들의 문화적 모임이다.
글쓰기에 관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강의들이 있지만 나는 피터 엘보의, 누군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는 방식을 가장 좋아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열 번쯤 읽고 피터 엘보의 다른 글쓰기 관련 책들도 읽어본 후에 모임을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려면 아마 십 년쯤 걸리겠지.
일단 오십 대 이상 남자들의 문화적 모임의 조건을 공상해봤다. 술은 먹지 않는다. 친목 절대 금지. (아직 확실치 않은)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나이 따지지 않기. 그러니까 형동생 먹기 없다. 그저 OO님으로 통한다. 지식과 문화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존중이 있어야 한다. 계엄과 내란을 지지하는 극우 금지. 정말 좋아하는 문화 하나 이상이 꼭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말, 글, 사진, 영상 등을 이용해서 공유해야 한다. 서로를 지지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남성우월주의 같은 것은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여성화'되고 있음을 당당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가 애착하는 문화를 나누는 것이 표면적 목표가 되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흔들리며 변화하는 정체성을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당장이라도 만들 기세 같지만 아직 결정적인 확신은 없다. 이런 모임을 원하는 오십 대 이상의 남자가 얼마나 될까.
이게 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큰비가 온 후여서인지 이런저런 모양의 구름들을 즐겼다. 개빈 프래터피니라는 사람이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와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라는 책을 썼던데, 이번 여행 전에 봤다면 어땠을까. 파도며 구름이며 한참을 더 쳐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휴가는 루틴을 깬다. 그 틈에서 새로운 것, 못 봤던 것을 발견한다. 돈은 없어도 공상력은 주머니에 넘쳐 흐른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알바도 하면서부터 가족휴가라는 게 사라졌는데, 이게 다시 가능해질지가 이렇게 불투명한 걸 알았더라면 좀 더 열심히 다녔을걸 싶다.
저 사진들은 모냐~~?? 왤케 선명한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