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일까요?
이기호,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2025)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지음), 문학동네, 2025
잘 완성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즐겁다. 그 이야기가 유쾌하든 암울하든 상관 없이 말이다.
반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닥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읽으려고 이미 마음먹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의미가 있으려면 좋은 이야기를 찾아 헤맬 때, 또는 그 이야기를 읽을지 말지 갈팡질팡 할 때뿐이다.
이기호 작가의 책은 예전에 몇 권 읽은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단편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다. 헛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특유의 유머감각, 어떻게든 살아 일어나 움직이는 인물들, 미문(美文)에 집착하지 않는 평범한 문체로 만들어지는 밀착된 의미 전달 등이 기억에 남는데, 무엇보다 작품 전체에 걸쳐 작가의 강한 자의식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읽기 시작하기로 한 '최신 한국 소설'의 첫 번째 책으로 골랐던 것이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오백 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었지만 다른 책들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그것은 몰입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였다는 물리적 증거이다(한 페이지를 읽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해서 그 책의 몰입도 또는 책의 장르에 따라 난이도를 짐작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몽상을 해본다. 독서 환경이랄까 그 날의 컨디션 같은 것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체념하고 말이다).
이 소설은 크게 세 개의 시간축 — 2020년대, 1990년대, 1790년대 — 그리고 인간과 개라는 두 가지 종(種), 더 세분하면 네 가지 — 산 사람, 죽은 사람, 산 개, 죽은 개 — 가 얽히며 진행된다(최신 소설이다보니 스포일러를 의식하게 된다).
이기호 작가는 전작들을 보더라도 제목을 길게 짓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제목을 봤을 때 '이시봉'은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그리고는 곧 ‘명랑한데 짧은 삶? 비극적인 결말인가?’, ‘투쟁 없이 살았다고? 고생 없이 살다 죽었다는 얘기인가?’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소설을 다 읽고 제목을 다시 이리저리 보니 주제나 내용을 압축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그 의도는 실패다.
여기서 개는 꽤 다른 존재로 여겨진다. 반려동물을 넘어선, '비인간 행위자'의 지위에 놓여있는데, '작가의 말'에 밝혀 놓은 ‘도움과 영감을 준 책’ 중에 도나 J. 해러웨이의 《해러웨이 선언문》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대단한 주제 의식을 전달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데 공을 들이는 소설가가 좋다. 당연히 그 '좋은'이라는 판단은 항상 어렵다. 누구에게나 통하지도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내게 좋은 것을 다른 누군가도 좋아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할까라는 물음도 생긴다. '이거 정말 좋아!'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정도가 최선 아닐까 싶다. 아니면 '이거 좋더라구요'하며 수줍게 옆에 쓱 밀어주는 정도이거나.
내 평생 처음으로 '북토크'(왜 영어일까?)라는 것을 신청했다. 마침 집 근처에서 이 책을 가지고 이기호 작가 북토크 행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정말 이런 데 가기 싫어한다. 책을 읽었으면 됐지 굳이 어딘가에 가서 '부가정보'까지 듣고 싶진 않다. 그런데 신청을 했다.
이유 중 하나는 내게 있는 일종의 작은 강박 같은 것인데, 심리적 '안전지대'(comfort zone)을 억지로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탐독했던 다양한 자기계발서들의 영향이지 싶다. 그래도 집 옆이어서 그나마 신청할 생각을 한 것이니 너무 큰 압박 없이 타협점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작가의 창작 과정이나 배경보다는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부분에 주목했는지가 궁금하다. 8월 19일에 하니까 그 내용도 전해볼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을만하냐고?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는 것은 매우 편하겠지만 그건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피하고 싶다. 오히려 다른 소설들과의 관계를 만들어서 그것보다는 이것, 그것을 좋아한다면 이것 같은 식으로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좀 기다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