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연체동물이 되긴 늦었겠지
그럼 스트레칭이라도 해야겠다
함민복 시인의 《우울씨의 일일》에는 ‘우울씨의 일일’ 연작이 있다. 1990년대의 정서가 즐거움은 아닌 것 같다. 지금에야 ‘세기말 분위기’는 낭만적으로 회고되고 있지만 당시 이십 대를 보낸 나도 별로 공감되진 않는다.
‘우울씨의 일일 1’은 꽤 긴 산문시다. 산문시라는 형식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습작했던 시도 산문시였다. 한국 시들이 가지고 있다는 그 ‘내재적 운율’이라는 것의 알듯모를듯한 정체, 한국 힙합을 들을 때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그 ‘라임’이라는 것 등을 떠올리며 그의 시를 읽는다.
불만족에 익숙해지다보면 만족을 추구하기 보다 가까운 이들만이라도 그 불만족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는 데 그친다. 조금의 이타성이라도 남아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같은 질문은 이제 ‘어느 쪽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어?’로 바뀌어야 한다. 태양광 발전은 잘 돌아가고 그 전기로 SNS도 잘 돌아가겠지만 제 몸을 전시하는 것으로 생존율을 높일 수는 없을 거다.
개인에게 낙인처럼 남는 문장 하나가 그 사람의 일생을 조종하는 것 같다. 내 경우는 ‘남과 달라야 한다’였다. 이건 족쇄다. 남들이 많이 하거나 좋아하는 건 의심하고, 피하고, 하지 않는다. 가령 주식, 골프, 출세, 런닝, 각종 모임 참석, 베스트셀러 읽기 등. 그냥 조금 연체동물처럼 흙탕물을 즐기며 살았다면 어땠을까 한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그 물로 나의 갓끈을 씻는 것이 좋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는 것이 좋으리라.”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濯兮, 可以濯吾足. 전각으로 새겨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