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몰스킨보다 시집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2016)
시집의 맨 뒤에는 왜 여지없이 '문학평론가'의 감상 또는 평론이 달려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 詩는 이렇게 읽으면 됩니다, 라고 참고서처럼 해설하려는 것인지, 해당 평론가의 권위를 (가장 말도 안되는 추측이지만) 시집에 부여하려는 것인지, 이젠 존재 의의가 희미해진 문학평론가들의 자존감을 고려한 출판사의 배려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평론'들은 (이 시인만큼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의 존재증명에만 몰두할 뿐 이해도 공감도 구하지 않는다.
《죽음의 자서전》, 김혜순(지음), 문학실험실, 2016
시집을 메모장으로 (어쩌면 세계 최초로) 쓰는 사람이 있다. 오해는 없길. 자신의 메모가 행여나 詩처럼 쓰이지 않을까하는 무속적 바램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 물론 시집에는 여백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몰스킨 포켓 노트가 3만원이 넘는데, 시집의 경우 페이지 수는 조금 적지만 대부분 1만원 정도하니 비용 측면에서도 시집이 앞선다(몰스킨 하나 값이면 시집을 약 2.5권 살 수 있다).
게다가 시집에는 詩가 있다. 메모를 하며 詩를 읽거나 詩를 읽으며 메모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메모의 물리적 흐름에 詩의 존재가 방해될 때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글씨의 자연스러운 배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첫 번째 메모는 연필로, 두 번째는 파란색 중성펜으로 쓰는 것이 나름의 규칙이지만, 연필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을 때는 그냥 있는 펜으로 쓸 수밖에 없다.
시인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는 것은 詩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 시인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상관 없이 확실히 방해가 된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사진이 아닌 캐리커쳐를 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시인의 삶, 생각, 학벌, 업적, 질병, 상벌내역, 가족관계, 성장배경, 우여곡절 등을 참고하고 싶지 않다. 말하자면, 하나뿐인 정답을 힌트 없이 맞추겠다고 덤벼드는 신비평氏의 태도가 아니라 저자는 죽었으니 정답은 독자가(내가!) 가지고 있다는 쪽이다.
그러나 시집은 독자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간지에 표시된 화려한 수상 경력을 보라. 상을 많이 받았으니 좋은 詩라는 암묵적 태도. 작가의 인생 역경을 통해,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승전결이 없는 詩를 어떻게든 읽도록 만들겠다는 태도.
나는 네 페이지 가량의 〈포르말린 강가에서〉가 좋았다.
(…)
시험관에 담긴 뇌가 열 손가락으로 온몸을 긁고 있다.
피맺히게 긁고 있다.시험관에 담긴 뇌는 떠난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시험관을 떠난다.
연쇄살인범의 비닐봉지에 담긴 머리처럼
흔들흔들 떠난다.
(…)
시인은 '시인의 말'에 "이 시집(49편의 시)을 한 편의 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싫다. 한 번은 "한 편의 시"로, 또 한 번은 "49편의 시"로, 다른 또 한 번은 (따옴표 없이) 내 맘대로 읽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