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이론가는 시인이 될 수 있다"
팀 잉골드, 《조응》 (2024)
얼마 전부터 구 트위터, 현 엑스(X)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머스크가 인수한 후로는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간간이 뉴스레터도 알려야겠고 책에 관한 정보가 여전히 많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팀 잉골드의 《조응》은 작년에 사두기만 하고 독서 우선순위에는 오르지 못했는데,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트위터 신간봇에 '컴북스이론총서'1 《팀 잉골드》가 올라온 것을 봤다. 이 책소개를 보고,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해서 《조응》에 관심을 가졌던 것을 떠올렸다.
인류학은 인간에 관해 해명하는 분야가 아니다. ‘인간과 함께’하며 세계 속에서 삶의 조건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팀 잉골드는 인간과 비인간, 인공물과 자연물의 경계를 허물며 인류학의 범위를 확장한다. 끊임없이 함께 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는 ‘조응의 인류학’으로 현장의 생동감과 맥락을 온전히 담아낸다. — 《팀 잉골드》 책소개 중
팀 잉골드(1948~)는 영국 애버딘대학교의 사회인류학 명예교수로, "생태학, 진화론, 환경에 대한 지각과 숙련된 기술의 수행 등을 주제로 글을 썼"고, "인류학과 고고학, 예술, 디자인 및 건축의 접점을 찾는 교육과 연구를 해왔다".
한국어판이 출간된 저서로는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The Life of Lines, 2024), 《라인스》(Lines, 2024), 《조응》(Correspondences, 2024) 등이 있다. 세 책 모두 같은 해 상반기에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됐다는 것이 흥미롭다.
《조응》, 팀 잉골드(지음), 김현우(옮김), 가망서사, 2024
Tim Ingold, Correspondences (2020)
《조응》은 학술서가 아니라 "여섯 장으로 나뉜 스물일곱 편의 에세이"로 엮은 책이다. 잉골드가 "직접 바다와 하늘, 풍경과 숲, 기념물과 예술품 등 수많은 것과 글쓰기로 조응한 사례들을 모았다"(24)고 한다. 에세이를 시작하기 전 서문 역할을 하는 '초대하며'에서는 자신의 이론 또는 세계관을 간략히 설명한다. 잉골드의 글을 처음 접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어지는 에세이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다.
잉골드는 선(線, line)을 말한다. 그에게 "'선'은 존재자들이 살아 있는 과정에서 발산하고 남기는 자취이며, 존재들이 서로 엮이고 얽히는 세계의 근간"(22, 역자주)이다. "인간과 비인간, 인공물과 자연물의 경계"는 더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돌, 나무, 산의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끼, 새, 산악인 등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는 중인 사물 또는 존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30) 수많은 경계들로 구성된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다.
사물을 그들의 이야기로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과 조응할 수 있다. (…) 바라봄의 방식을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사물이 모양과 범주에 자리 잡고 나서야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리는 습관에 깊이 젖어 있다. (…) 세계와 조응하려면 아예 무대 뒤로 가서 은밀히 움직이는 존재들에 합류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 그들은 그저 존재하는being 상태가 아니라 생성 중인becoming 상태다. 조응하는 데에는 (…) 존재론에서 개체발생론으로 나아가는 전환이 요구된다. (30-31)
이 '조응'(調應, correspondences)은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36)
모든 조응은 계속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조응은 열려 있다. 정해진 목적지나 결론을 향하지 않으며 모든 말과 행위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조응은 대화적이다. 조응은 한 개체가 아니라 여러 참여자 사이에서, 그 와중에 이뤄진다. 이러한 대화적 참여로부터 앎이 끊임없이 샘솟는다.
그래서 "사물들은 근본적으로 서로에게 열려 있으며, 나뉘지 않는 단일한 생성의 세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다중 존재론은 다중 세계를 상정하지만 다중 개체발생론은 단일한 세계를 상정한다".(31)
읽다보니 불교적 세계관 — 모든 존재가 본래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라는 불성(佛性) 사상 — 과 닮아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화엄경》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역시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존재가 다른 모든 존재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의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니, 비인간 존재와의 조응은 몇천 년 전 이미 불교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조응과 상호작용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우리에게 상호작용은 익숙하지만, 그것을 통해서는 엮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다. 선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상호작용의 당사자들에게는 미리 정해진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이 있으며,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대하고, 거래하듯 교류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변형되지 않는다. 차이는 애초부터 존재하며 상호작용 후에도 그대로다. 상호작용은 관계 사이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조응은 어우러져 나아가는 일이다. (…) 조응은 삶들의 끊임없는 전개와 생성 속에서, 서로 합류하고 구별 짓는 방식이다. 상호작용에서 조응으로의 전환은 존재자와 사물 간 관계를 사이(between-ness)에서 와중(in-between-ness)으로 재정립하는 근본적 변화가 수반된다. (33)
이 세계관을 숙지하면 이어지는 에세이들을 읽기가 한결 수월한 것은 분명하다. 한편 치밀한 이론적 글을 기대하고 잉골드의 글을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회복적 읽기의 태도가 함께 필요하기도 하다. '이론'에 대한 잉골드의 입장은 이렇다.
이론을 다루는 작업도 공예 행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의 물질과 힘에 기반을 둘 수 있다. (…) 이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은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론가는 시인이 될 수 있다. (41-42)
아시다시피 '컴북스이론총서'는 현대 사상가들을 적은 분량의 문고판으로 소개하는 시리즈이다.



클리퍼드 기어츠의 ⟪문화의 해석⟫을 보면 인류학 연구자가 연구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이 연구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인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어서 존재와 생성이라는 범주를 의미있게 설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메일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