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이 책이 속한 분류는 인류학, 식물 일반, 생태학, 환경문제 등이다. 이 분류만으로 책 내용을 추측해보자면 '식물들의 생태계가 처한 환경문제를 인류학적으로 탐구'한 책일까?
아니요.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애나 로웬하웁트 칭(지음), 노고운(옮김), 현실문화, 2023
Anna Lowenhaupt Tsing, 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ty of Life in Capitalist Ruins (2015)
저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Anna Lowenhaupt Tsing)은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다. 연구 분야는 환경 문제, 세계화, 인류세 연구, 페미니즘 이론, 인간-비인간 관계 등이고, 이론적 배경은 다종족 민족지, 인간-비인간 집합체, 포스트휴머니즘 등이다.
저자 소개만 봐도 웬만한 사전 지식 없이(책 한 권 읽는데도 선행 학습이 이렇게 많이 필요하다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선행先行'이라면 끝이나 목표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책 읽기의 종국적 목표가 있을까. '관련 지식'이 적확하겠다.) 이 책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도 이 책을 번역한 노고운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만약 이십 대로 돌아가 대학 전공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기꺼이 선택하고 싶은 학과다) 교수가 해제를 쉽게 잘 써놓았다. 열 페이지 정도 되는 이 해제만 꼼꼼히 읽어도, 이 책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논증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 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64)인데, "교란과 오염을 통한 다종多種의 협력에서 등장하는 불확정성에서 생명의 가능성을 보자고 제안"(520)한다(교환, 오염 등의 개념에 대한 정리는 조금 뒤에서). 간단히 말해, '협력적 생존'이다.
거칠게 말해보면, 사람은 혼자 못 산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다른 생물종들이 있어야 사람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각자 홀로 생존한다는 식의...환상"을 갖고 있다. 사실을 확인해보자.
사실 다종민족지 이론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단일 생물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DNA 중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물질은 소수를 이루고(10% 정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연구가 널리 받아들여진 후 '기껏해야' 50% 정도라는 보수적인 주장도 등장했다). 대부분은 동식물, 곤충, 미생물을 구성하는 물질과 동일한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몸 안에는 1조 개가 넘는 무수히 많은 미생물이 공존하며 이들이 없다면 인간은 면역체계의 균형을 잃을 것이고, 음식물을 소화시키지도 못해 죽고 말 것이다. ... 인간과 비인간의 몸과 삶은 다종의 생물이 모여 이루어나가는 일종의 배치1(assemblage)인 것. (511-512, 역자 해제 중)
단편적 사례로, 우리 장 속에 그렇게도 키우고 싶어하는 유산균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된다. 그래서 도나 해러웨이는 "이렇게 인간과 비인간으로 이루어진 다종의 생물들이 서로의 몸과 삶의 공동 구성요소로서 함께 진화해왔다고 보고, 이들의 관계를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라고 부른다"고 한다(유산균은 '반려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소한 영역의 책을 읽을 때 부딪히는 첫 번째 어려움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던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칭의 이론에서는 대표적으로 '교란'(disturbance)과 '오염'(contamination)이 있다.
교란: 다종의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살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서로의 세계 만들기에 영향을 미치며 벌이는 활동(517), 간단히 말하면 "의도치 않은 디자인"(271) (〈용어 찾아보기〉에 '교란'은 없고, '인간에 의한 교란' 항목이 있다. '교란'은 책에서 일반 명사처럼 자주 쓰여서인 것 같다.)
오염: "서로 다른 생물종이 접촉하며 서로의 신체 활동에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 특정한 방향으로 생존, 진화해가는 양상"(518)
(친절한 책들은 이렇게 생소하지만 중요한 개념들을 저자든 역자든 설명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친절한 책이다.)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다양한 생물끼리의 협력은 인간의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인간을 위해 존재"2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협력 자체가 자본주의가 망쳐놓은 환경 파괴 및 사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 '협력적 생존'을 자본주의, 환경파괴의 대안으로 보는 것 자체가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적, 공간적, 이론적으로 방대한 이 책을 단번에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중심적 사고, 진보 서사의 단순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 단서를 제공해줬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다음에 읽을 책은 리디아 데이비스의 《형식과 영향력》이다.
이 '배치' 역시 중요한 개념이다. 들뢰즈의 '아장스망'(agencement)를 번역한 것(58)이라고 하는데,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는 것 같다. 칭은 이 개념을 "상호작용을 하는 구조를 가정하지 않고 존재하는 방식이 모인 것"(58 각주)으로 사용했다.
노고운, 〈애나 칭 — 비인간 생물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2020)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