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천 개의 바람들
유페이윈·저우젠신, 《대만의 소년》 (2024)
꽤 오래전에 효도 여행이자 생애 첫 패키지 여행으로 대만에 갔었다. 길지 않은 일정에 그리도 많은 곳을 다닐 수 있는 패키지 여행 상품의 효율성에 놀랐는데, 시간에 쫓기며 다니다보니 당연히 공간을 곱씹으며 오랫동안 눈에 담는 경험은 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몇 개 있는데 — 버스 안에서 내다 본, 예상보다 지저분한 건물들(나중에 들으니 잦은 태풍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유명한 지파이 집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위안화로 지불하겠다고 가게 주인과 싸우던 중국 본토 관광객, 헤어 컨디셔너를 파는 곳이 별로 없었고, 평생 본 어떤 파도보다 거칠고 사나웠던 파도가 치던 해변, 한국어에서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한국인인 줄 알고 따라다녔던, 한국 여성과 결혼한 대만인 가이드.
한동안은 여행으로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지만, 몇 년 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더 알고 싶고 가 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왜일까? 어렴풋한 느낌으로는, 우리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경계 위에 서있는 긴장감 같은 것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돌아볼 때 느끼는 긴장감과도 닮았다.
《대만의 소년》 (총4권), 유페이윈(글), 저우젠신(그림), 황선미·김정은·권애영·박은혜(옮김), 마르코폴로, 2024
游珮芸(글), 周見信(그림), 來自清水的孩子 (2021)
원제가 "칭수이에서 온 아이"(來自清水的孩子)인 《대만의 소년》은 대만 현대사에서 국가적 폭력이 어떻게 자행됐는지를 차이쿤린(蔡焜霖, 1930~2023)이라는, 그 폭력에 의해 무력하게 유린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 그래픽노블이다. 그렇다고 하여 역사적 사실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차이쿤린이 생사를 가르는 문턱 앞에서도 희망, 의지, 사랑을 끝까지 지키며 대만의 민주화에 기여하는 개인적 여정을 기록한다.
읽는 중에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코를 푸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넘치고 말았다. 젊은 시절에 희생된 친구들, 많은 회한들을 떠올리며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부르는 장면에서였다. 뒤에 남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축복을 남기는 노래, 마음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형주씨가 개사해 부른 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많은 참사와 비극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곡의 원작 詩는 클레어 하너가 1934년에 발표한 'Immortality'이다.
Do not stand
By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
I am the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i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As you awake with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fling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ing flight,
I am the day transcending night.
Do not stand
By my grave, and cry —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대만의 현대사는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이념 대립, 권위주의, 국제 정세로 인해 두 나라 모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인권을 짓밟혔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그 위에 민주주의를 세웠다. 수많은 천 개의 바람들이 도와줬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관련 책을 더 많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