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칸과 칸 사이의 잠재력"
오혁진, 《만화 형식의 역사》 (2022)
《만화 형식의 역사: 윌리엄 호가스에서 장 자크 상페까지》, 오혁진(지음), 해피북미디어 (2022)
이 책은 "서양 만화의 형식과 역사"를 다룬다. "만화의 서사에 관해 다루는 것은 쉬운 선택"인데, 그것은 "2차원 평면의 이미지를 아우르는 형식"이라는 "만화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5)이다.
만화는 기호화/연속언어의 블록을 창조한다. 달리 말해 캐리커처, 기호화, 칸, 간격, 연속언어 같은 일련의 만화 형식을. 그렇다면 바로 이 지점이 현재 만화 평론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6)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7)
서양 만화 역사의 결정적 지점을 다루며 근대만화에서 현대만화로 이어지는 궤적을 그리기
이 과정에서 만화 형식이 어떠한 맥락에서 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조망함으로써 만화 형식의 본질에 관하여 탐구하기
구성은 이렇다.
근대 만화(1, 2장)
미국 신문 만화(3, 4, 5장)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모더니즘 경향(4, 5, 6, 7, 10, 11장)
여성 만화(8장)
만화 매체의 변화(9장)
대부분이 처음 듣는 작가들이지만, 형식을 설명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역사적 맥락 위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따라가며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저자 오혁진씨는 만화평론가로, 주관심사는 "만화의 역사와 형식"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자신의 논증을 위해 작가들을 선별하고 작품 형식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등을 구성하는 데 꽤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11개의 장 중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콜라주, 초현실주의와 관련된 장들이었는데, 윈저 맥케이(Winsor McCay, 1866-1934)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에 관한 내용이었다.
"윈저 맥케이와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축제, 마술, 광대, 서커스, 놀이공원 같은 '카니발적 환상'1을 공유한다"(73)고 저자는 평가한다.
카니발적 환상은 좀처럼 자연적 이상에 기댄 목가적 풍경을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적 양식으로 순간과 변화의 우위, 감각적 지각의 팽창, 생활 감정의 역동화를 재현한다. (78)
맥케이의 작품 "《리틀 네모》는 원근법을 통해 구축된 꿈의 세계다. 원근법이 2차원 평면에 3차원 환영을 투영하듯 현실의 세계에 꿈의 세계를 투영한다."(77) 또 그는 "칸과 칸 사이의 잠재력"이라는 지점에서 "간격과 운동에 관한 만화적 혁신을 수행"(79)한다.
이것은 막스 에른스트의 콜라주 소설 — "글과 콜라주 그림이 결합된 삽화집 형식의 작품"(134) — 을 다룬 장과도 연결되는데, "우리의 의식은 텅 빈 간격 즉 의미의 공백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의미적 무게가 결여된 단어에 의지해서라도 서사적 의식을 기어코 작동시킨다."2(145)
초현실주의 콜라주는 사물의 잘린 부분을 다른 요소들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객관적 문맥에서 자유로이 벗어나게 함으로써 간격의 의미론적 잠재성을 경이롭게 비약시킨다. (…) 콜라주 그러니까 분절, 연결, 간격의 배열. (133-134)
시간이 지나서 이 책을 생각하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는 '간격'일 것이다. 만화를 읽는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나는 그 연속적인 칸과 칸 사이의 간격에 무언가를 계속 채워넣어 연결하고 있었다.
콜라주 소설 더 정확히는 그것의 간격은 분리/통합, 분절/연결의 변증법적 형식이다. 콜라주 소설의 간격은 의미를 단절시키면서 동시에 비약적인 거리로 풍부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생산해낸다. (140-141)
그리고, "칸/페이지, 글/그림, 캐릭터/배경이라는 만화의 이중적 층위는 콜라주의 구성 체계와 상응한다."(147)
이 책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관련 작품의 도판(이미지)이 충분히 실려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예상이 되지만, 저자의 설명과 일치하는 도판이 바로 옆에 함께 있었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개념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관련 책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챗GPT에게 물어봤다. 결과 중에 미하일 바흐친의 《라블레와 그의 세계》,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반항의 힘》에 관심이 가는데, 한국어판은 없다. 관련 글이나 논문은 좀 있는 것 같다.
다른 얘기지만, 음모론이 작동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사이의 간격을 그야말로 어떤 서사로든 채워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