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말하기 까다로운 책이다. 그러나 두 페이지만에 이 책이 좋아졌다. 시작은 이렇다. 작가 존 다가타(John D'Agata)가 라스베이거스에서 16살 소년이 자살한 사건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리고 편집장의 지시로 인턴 편집자 짐 핑걸(Jim Fingal)이 이 글에 대한 팩트체크를 시작한다.
《사실의 수명: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 존 다가타, 짐 핑걸(지음), 서정아(옮김), 글항아리, 2025
John D'Agata, Jim Fingal, The Lifespan of a Fact (2012)
이 책의 편집 디자인은 꽤 독특하다. 첫인상은 혼란스러웠지만 읽을 수록 내용에 적합한 형식이라고 느껴졌다(원서의 디자인은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한국어판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라면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페이지 가운데는 작가의 글이고, 좌우는 편집자의 팩트체크 결과인데, 팩트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은 빨간색, 부합하는 내용은 검은색으로 구별했다. 원문을 인용한 후 팩트체크 설명을 하기 때문에 가운데 원문을 읽지 않아도 내용 파악에는 문제가 없다.
팩트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편집자와 작가는 서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데(그래서 둘은 빨간색으로만 대화한다), 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저널리즘과 같은 엄격함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기 때문에 기초적인 사실 관계는 정확해야 한다는 편집자의 입장.
자신의 글은 논픽션이 아니라 '에세이'이기 때문에 그 어원과 마찬가지로 '시도'로서의 예술이지 "정보나 검증 가능한 경험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저자의 입장.
이 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감정적으로도 부딪히고 서로를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책의 중반까지는, 사소하게 느껴지는 수치까지 사실여부를 검증하는 편집자에게 공감했고, 사실보다 문맥을 더 중요시하는 작가는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각자가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서로 넘어섰을 때(그건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팩트를 통한 공격과 방어가 아니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 소통 후에 편집자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긴다.
설령 모든 의문점이 불편부당한 제3자의 목격자에 의해 검증될 수 있었다 해도, 또 설령 제가 레비가 언제 집을 나섰고 얼마나 높은 곳에서 투신했는지, 그가 오후 6시 1분 53초에 스트래토스피어 타워에서 뛰어내려 갈색 벽돌이 헤링본 무늬로 배치된 보도 위로 도합 8초에 걸쳐 곤두박질치기까지 바람은 어떤 방향으로 — 얼마나 세게, 어떤 온도로, 먼지를 머금거나 머금지 않은 채 — 불고 있었는지까지 틀림없이 아주 세세하고도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었다 한들 ... 음, 그랬다면 ... 글쎄요, 저는 제 소임을 다했겠지요. 하지만 그런다고 그가 죽었다는 현실이 달라지나요? (p.152)
이 책이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읽히는 이유다.
특히 예술, 논픽션, 에세이에 관해 논쟁을 벌이는 (절정에 해당하는), 두 주인공이 깊이 있는 지식과 견해를 주고 받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실제 사건을 다루는 글이라고 해서, 팩트에 기반한 저널리즘의 원칙, 도덕성의 원칙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예술, 특히 에세이라는 장르의 "시도와 시험과 실험" 가능성. 그 둘의 충돌. —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것이 둘로, 또 명확한 경계선으로 나눠진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탈진실'의 시대에 각자의 진실에 따라 쓰고 읽을 위험은 없을까. 한편으로는 그런 걱정도 하게 된다.
다음에 읽을 책은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