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기록〉을 쓰다보면 대학교 시절 얘기를 자주 하게 된다. 왜 그런 걸까? 책도 별로 읽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억지로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이론이나 지식, 특히 문학이론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어떤 문학 비평을 읽었을 때, 그 대상이 된 작품과 비평 사이의 공간에 놓여있는, 나로서는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연결고리가 궁금했다. 나도 시나 소설을 읽고 그런 비평을 쓰고 싶었다.
물론 학교 수업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학이론 입문서를 뒤적이고, 귀동냥으로 알게 된 유명 이론가들 —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미셸 푸코 등 — 의 책을 읽어보려고 했으나 알 수 없는 내용들 뿐이었다. 문학 계간지를 보면 다들 숨쉬는 것처럼 익숙하게 가져다 쓰던데 말이다. 아마도 프랑스 이론가들, 동문선 출판사(대표적으로)에 대한 편견 또는 트라우마는 이때 생긴 것 같다. 이해할 수 없으면 미워하게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 갈증은 지금까지도 형태를 바꿔가며 잠복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비비언 고닉, 매기 넬슨, 리디아 데이비스 등의 에세이를 최근에 읽다보니 꽤 자주 이런저런 이론들을 언급하는데, 그때마다 잠복해 있던 갈증이 자극 받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떤 정보를 보고 사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이 책을 읽고 드디어 그 갈증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책 제목은 잘못 정한 것 같다).
《한권으로 읽는 문학이론: 소쉬르부터 버틀러까지》, 올리버 지몬스(지음), 임홍배(옮김), 창비, 2020
Oliver Simons, Literaturtheorien zur Einführung (2009, 2014)
이 책은 내가 찾던 책이다. "이 책의 목표는 중요한 이론적 저작을 선별하여, 이론의 서술형식과 즐겨 사용하는 비유 그리고 특징적인 사고 유형을 예로 들어 이론을 설명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구체적인 독서지침을 가지고 이론서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좋다.
이 책은 "[문학] 이론을 그 역사적 계보와 서술방식에 따라 3부로 구성해서 소개"하는데, 그 이론들을 "기호 삼각형"이라는 맥락 또는 모형을 기초로 해서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책을 읽어나가며 이론 간 연관성, 유사점, 차이점 등을 파악하는 데 이 삼각형은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이 3부로 구성된 이유는 바로 이 삼각형의 꼭지점들과 연결되기 때문인데, 목차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제1부 의미의 이론 (→ 기의)
빌헬름 딜타이와 해석학의 탄생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의 수용이론
페터 손디의 해석학
폴 리쾨르의 은유이론
제2부 기호의 이론 (→ 기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 해석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롤랑 바르트의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자크 데리다의 포스트구조주의
폴 드 만의 해체론
제3부 지시의 이론 (→ 지시대상)
사회: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비판이론,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
문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 클리퍼드 기어츠의 해석학적 인류학
역사: 미셸 푸코의 담론분석, 스티븐 그린블랫의 신역사주의
육체: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세미오틱 이론,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이론
매체: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매체이론, 장 보드리야르와 가상현실
각 이론 별로 비슷한 분량이 할애되긴 했지만 롤랑 바르트와 미셸 푸코의 경우에는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후 "구체적인 독서지침을 가지고" 더 읽어봐야겠다 싶은 저자도 우연히 이 둘이었다. 우선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 푸코의 〈담론의 질서〉, 《지식의 고고학》을 읽어볼 생각이다.
3백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에 21명의 이론을(문학이론과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연히 각 이론을 상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이론들이 주고 받은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덕분에 드디어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차이, '해체', 담론' 개념 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워낙 압축적이다보니 문장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른 책보다 더 많은 밑줄을 그었다. 거의 5, 6백 페이지 책을 읽는 에너지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너무 고마운 책이다. 나와 같은 갈증을 느끼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범접하기 어려운 책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