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내 첫 기억은, 중학생 시절 동네서점을 운영하던 친한 사장형 — 돌이켜 생각해보면 책을 더 좋아하게 된 건 그 형의 덕도 있다 — 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집 근처에 있던 광운대를 야간으로 다니던 만학도였는데, 어느날인가 '광주 사람들 마음도 이해가 가. 그 젊은이들이 총에 맞아서 순식간에 쓰러지는 걸 보고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라고 했던 것 같다.
난 그 말을 듣고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어서 잠자코 듣기만 했다. 5·18 또는 광주. 어린 나이에도 무슨 큰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던 것 같지만 잘 모르겠다.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숨죽여 하는 얘기를 우연히 엿들었던 건지, 아니면 오히려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갔던 뉴스를 봤던 건지 모르겠다.
공수부대원이 휩쓸고 지나간 길바닥에 교복을 입은 중학생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남동성이 달려가서 살펴보니 중학생 한 명은 이미 숨이 끊어진 채 무엇에 밟혔는지 가슴이 푹 꺼져 있었다. 다른 한명은 "엄마! 엄마!"하는 희미한 신음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마저 곧 멎었다. 남동성은 두 소년을 길에서 들어내 가게 옆에 붙여놓고 부대로 돌아갔다. 이날 밤 몇사람의 시민이 더 죽는 것을 보면서 남동성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속으로 '엉엉' 울었다. 누구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허망함' 때문이었다. (166)
내가 중학생일 때를 떠올리면 그래도 꽤 성장했을 때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지금 중학교 3학년인 둘째 아이를 봤을 때는 아직 한참 어린애일 뿐이다. 그런 아이들이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황석영·이재의·전용호(기록),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엮음), 창비, 2017(전면개정판)
대학 입학 이후로는 5·18에 관해 많은 정보를 접했지만 대부분 파편적이었다. 그래서 작년에 사두었던 이 책을 이번에 드디어 읽었다. 이 책의 초판은 1985년에 나왔고 2017년, 32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개정판이 발간됐다. 그 이유는 "2000년대 들어 성립한 두번의 보수정권 아래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눈에 띄게 후퇴하자 더이상 개정판 발간 작업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간행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힘들었다.
이번 내란 사태에 관한 소회에서도 밝혔듯이,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전두환을 모델로 한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이는(이 책을 읽으니 더 분명해졌다) 이번 내란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 민주주의는 더 강해지고 많아졌다. '촛불'과 '빛' 이전에 '횃불'이 있었기 때문이다.
5월 16일 금요일, 3일째를 맞은 민주화대성회는 전남도청 앞 광자에 3만여명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광주지역 학생운동 연합지도부는 이날의 시위를 이전과 달리 '횃불시위'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박정희 군사쿠데타에서 유신독재로 이어진 18년간의 암흑을 민주화의 횃불로 밝히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51)
'정치'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정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정신적·물질적인 모든 것의 총화(總和), 가능성을 실현해낼 수 있는 힘,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만들기 같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애청하는 〈매불쇼〉에 박진영 교수가 출연해서 '자신은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의심한다'는 말을 했다. 민주주의와 의심이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 말에는 공감할 수 있다. 좀더 의심했다면 어땠을까?
'이 빨갱이 새끼들'이라는 분노를 항상 먼저 터뜨렸던, 광주를 진압한 공수부대원, 용공분자들의 폭동이라는 정부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인 시민, 지금도 북한군 투입설을 주장하는 자 들에게 무한히 연료를 공급하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그 수많은 살인들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 끔찍하다.
마지막으로, 전두환과 그 무리들을 폭력이나 사적 응징이 아니라 법에 의한 처벌에 맡겼다는 점에서 광주 시민들의 인내심과 민주주의 정신에 또 다른 존경심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