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화 비평'을 선망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한국 대중문화와 매거진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90년대였던 것 같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매거진은 〈리뷰〉다. '고급문화'가 아닌, 우리가 즐기는 대중문화를 이렇게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책을 읽으며 알았다.
1990년대는 인터넷 대중화가 시작된 시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피씨통신을 거쳐 인터넷에 빠져들면서 이 디지털 문화를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고 싶었다. 단지 '나는 이게 좋다/싫다'라는 취향에 따른 이분법적 글이 아니라, 이론적인 근거와 방법론을 가지고 글을 쓰고 싶었다. 공부를 시작한 동기이기도 하다.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공부를 바탕으로 문화이론에 관해 혼자 공부해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었으나 잘 되지는 않았다. 예전처럼 절실하지 않아서였을까. 그러나 또 해보고 싶었고, 이번에는 레이먼드 윌리엄스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최근에 읽은 《음악은 왜 중요할까?》에서 저자가 윌리엄스에 관해 언급한 내용도 영향을 준 것 같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박만준(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1988)는,
영국의 저명한 문화비평가이자 소설가. 문화연구와 문화유물론의 기틀을 놓은 비평가로서 정치, 문화, 문학, 미디어 분야에서 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
그람시의 영향을 받아 문화유물론을 기반으로 한 문화연구, 혹은 문화사회학의 기틀을 구축했다. 언어, 문학,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텔레비전, 소설, 영화 등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구성요소와 발달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미디어 이론의 권위자로도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에는 페미니즘, 평화주의, 생태주의 등의 사회운동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노동운동이 환경운동과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레이먼드 윌리엄스, 《기나긴 혁명》 (2021) 저자 소개 중
《레이먼드 윌리엄스,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책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을 번역한 박만준씨가 쓴, 1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개론 성격의 책으로, 윌리엄스의 사상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의 요약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런 형식의 책을 즐겨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도움이 됐다. 그 이유는 어떤 사상 또는 사상가에 관해 읽을 때 역사적, 사상적으로 어떤 맥락 위에 올려져 있는지 알고 시작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완성도에는 흠이 많지만 — 가령 다른 책에서 인용한 부분을 표기하지 않았다거나 인용한 페이지 번호가 틀렸다거나 하는 — 이후 윌리엄스를 읽기 위한 예비 독서로는 충분했다.
현재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윌리엄스의 저서들의 현황은 이렇다.
《문화사회학》 (1981, 절판)
《현대비극론》 (1985, 절판)
《텔레비전론》 (1996, 절판)
《문화와 사회》 (2000, 절판)
《문학과 문화이론》 (2003, 절판)
《키워드》 (2010)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2013)
《시골과 도시》 (2013)
《기나긴 혁명》 (2021)
《문화와 사회를 읽는 키워드》 (2023)
앞으로 어떤 순서로 읽을지 생각중이다. 원서 기준으로 《기나긴 혁명》은 1961년, 《키워드》는 1976년,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은 1977년에 출간됐다. 그렇다면 《기나긴 혁명》은 윌리엄스의 비교적 초기 사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고,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은 그 발전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먼저 읽든 장단점은 있을 것 같으니 《기나긴 혁명》을 먼저 읽기로 한다(《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은 잊고 있었던 안토니오 그람시를 읽은 후에 봐야 할 것 같다).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신 《기나긴 혁명》 팟캐스트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왜 뭔가를 계속 읽고 쓰고 만들려는 걸까. 그것을 왜 다른 사람들에게 내놓고 싶어하는 걸까. 왜 생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책에서 발견한 이 문구를 여러 번 읽어본다.
창조 행위는 아주 종류가 많다. 그것은 이미, 그리고 능동적으로 우리의 실천적 의식이다. 그것이 투쟁적으로 될 때 — 자아 창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의미가 강조하는, 이른바 새로운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의식을 얻고자 하는 능동적 투쟁이 될 때, 그것은 많은 형식을 취할 수 있다. 그것은 물려받은(결정된) 실천적 의식의 길고도 힘든 재창조, 즉 흔히 발전으로 묘사되어 온 과정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근원에서 일어나는 투쟁일 수 있다.
— 레이먼드 윌리엄스,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10. 창조 행위' 중,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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