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날씨》와 《낭비와 베끼기》를 거쳐 《아르고호의 선원들》로 왔다. 태어난 이후로 성 정체성(性正體性)에 대한 혼란이라고는 전혀 겪지 않은 시스젠더, 스트레이트 남성으로서 나는 왜 '퀴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몇 가지 가능성을 상정해본다.
관대함, 진보적 이미지를 위한 지적인 장식을 위해서? 이 경우라면 평소의 나를 떠올려 봤을 때, 이 정도로 흥미를 가지고 책을 읽지는 못했을 거다. 그냥 대충 읽는 시늉만 하고 한 두 마디로 생색만 냈을 공산이 크다.
성적 호기심? 이 경우라면 포르노적인 관심일 것이다. '퀴어'라는 개념이 낯선 내가 여성으로 대상화한 저자들의 성적 취향과 행위 들의 ‘폭로’를 통한 호기심 충족. 만약 내가 이삼십 대였을 때라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제 성적 욕망에 내어줄 자리와 시간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가장 유력한 것은 이 작가들이 인간에 대한 시각을 더 넓혀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게 가장 가깝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인간을 알려준다. 인간이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였다.
《아르고호의 선원들》, 매기 넬슨(지음), 이예원(옮김), 플레이타임, 2024
Maggie Nelson, The Argonauts (2015)
이 책은 저자 매리 넬슨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제목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3대 시인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기원전 300?~245?)의 작품 《아르고나우티카Argonautika》"1의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 아마도 황금양피를 구하는 원정대의 모험 신화라고 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아르고호'는 이런 은유로 쓰인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는 "선박의 이름은 그대로임에도 바다를 항해하며 배를 점차 새로이 만들어 가는 아르고호의 선원"과도 같다고 바르트가 설명한 대목 ... 시간이 지나면서 선체의 각 부위가 교체되고 그러므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선박이 아님에도 변함없이 아르고호라는 이름으로 부르듯이, 연인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이 문장에 담긴 의미는 그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매번 갱신되어야 한다. "동일한 한 마디에 억양과 어조, 굴절을 통해 나날이 새로운 굽이들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과제이자 언어의 과제"이기에.2 (p.11)
인간은 살아가며 비단 성 정체성만이 아니라 갖가지 정체성의 위기를 만난다, 라고 단언하고 싶지만 이 '정체성'은 수렁 같아서 발 들여놓기, 말 하나 보태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저 '아르고호' 은유처럼, 깨지고 부서져도 침몰하지 않고 계속 고치고 교체하고 항해하면서 계속 나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이 진짜라는 완고한 주장은, 특히나 이 주장이 하나의 정체성에 매여 있는 경우에는, 착란에도 한 발 담그고 있기 마련이다.(p.25)
그렇다. "인간에 대한 시각이 넓어진다"를 다른 방향에서 보면 내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착란"에서 계속 멀어지는 정체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쯤되면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3이 "'퀴어'가 성적 지향과는 별 연관이 없거나 아예 무관한, 각양각색의 저항과 균열과 불일치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 되게끔 길을 내려 애"쓴 이유를 알겠다.(p.47)
넬슨은 세지윅을 이렇게 설명하는데, 참으로 탁월한 문장이다.
대신 [세지윅] 그는 하나보다 많고 둘보다 많지만 무한보다는 적은 것에 대해 말하고 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p.98)
"하나"는 "누구에게나 하나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강요"일 것이고, "둘"은 "규범/위반이라는 이분법"(p.117)일 것인데, 그렇다고 무한에 대해 얘기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이상적일 수 있을까.
이 책은 마치 영화의 롱테이크처럼 이어진다. 장이나 소제목 등으로 나누지 않고 2백 여 페이지가 하나의 덩어리다. 그러나 시간, 공간, 사건, 인용 들은 긴장감 있게 구성된다. 책의 후반부에 자신의 출산 순간과 파트너 어머니의 임종 순간 전후를 번갈아 쓴 부분은 긴박하게 교차 편집된 영화4를 보는 것 같이 생생하면서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글쓰기에 또 감탄한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가졌던 인상은 틀렸다. 이 책은 퀴어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간 동물"로서 관계를 맺고 사랑하며 돌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신의 지적, 성적, 감정적, 육체적,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게 뭐든 모조리 쏟아부은 글이었다.
다음 읽을 책은 존 다가타 · 짐 핑걸의 《사실의 수명》이다
이예원씨의 번역도 훌륭하다. 매끄러운 문장뿐만 아니라 굉장히 큰 한국어 어휘창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의외로 이 책의 출판사 ‘리시올/플레이타임’의 책을 많이 샀다는 걸 알았다. 책 제본을 비싼 PUR 제본으로 한 것도 마음에 든다. 주목할만한 출판사.
김원익(옮김), 《아르고호의 모험》, p.5
세지윅 책의 한국어판이 아직까지 한 권도 없다는 것이 의아하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