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데이비스의 질문이다: "우리는 똑같은 말을 철저히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가?"(51)
글쓰기에 대한, 혹은 기존의 형식에 대한 의심이나 불안이나 불만족은 새로운 형식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거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형식을 창조함으로써 그런 의심들을 형식상으로 통합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반면 낡은 형식, 전통적인 형식의 반복은 욕망이나 충동의 결여를, 혹은 그런 형식에 의심을 품거나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231)
《형식과 영향력: 자기만의 범주를 만드는 글쓰기에 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지음), 서제인(옮김), 에트르, 2024
Lydia Davis, Essays One (2019)
데이비스는 이 새로운 형식을,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계속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새로운 형식의 원천을 상세히 밝힌다.
가령, '단상'(斷想, fragment)이라는 형식을 "침묵, 생략, 축약과 함께 작동하면서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알려주는 텍스트, 그러나 완전한 경험의 효과를 지니고 있는 텍스트"(208)로 규정하며,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찬가와 단상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 스테판 말라르메의 《아나톨을 위한 무덤》 등으로부터 어떻게 영향 받았는지 설명한다.
또, '세 문장으로 된 일기'는 "매일 간단한 경험 한 가지씩을 아주 짧은 세 문장의 형태로 기록"하며 "매일 일기를 쓸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한다. 이 형식은 펠릭스 페네온(1861-1944)이 경찰 사건 기록을 이용해 쓴 《세 줄로 쓴 장편소설》로부터 영향 받았음을 밝히는데, 이런 내용이다.
새벽 5시, 폰다리 가에서 두 명의 남자가 P. 부제 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한 명은 부제 씨의 오른쪽 안구를, 다른 한 명은 왼쪽 안구를 꺼냈다. 네케르에서. (190)
페네온은 "이런 기록들을 타이핑한 세 줄로(반드시 세 문장은 아니었다) 제한하고, 미리 정해둔 길이와 사실의 재현이라는 제약 속에서 그것들을 가능한 한 생성하고 의미심장하게, 때로는 섬뜩하게, 또 때로는 익살스럽거나 기이하게 작성하는 작업에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189)
데이비스가 추구하는 것은 "발견한 재료를 시용하면서 그것을 거의 온전한 형태로 유지"하고 "최소한의 분량만 다시 쓰는 작업"이다.(77-78) 그리고 그 작업의 형식들은 그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부분적으로 성공하고, 다시금 시도"(33)한 결과물이다.
나도 찾고 있는 새로운 형식이 있다. 그 영향은 다른 문학 작품들보다는 음악들로부터 받고 있다.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multi instrumentalist)라는 말로는 부족한 FKJ가 자유롭게 구성하는 음악 같은 글.
FKJ & Masego, 'Tadow'
그리고, 여타 샘플링이나 리믹스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역시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인 Yussef Dayes가 자기 딸의 음성을 '수집'해 아름다운 곡으로 만든 것 같은 글.
Yussef Dayes, 'The Light' (feat. Bahia Dayes)
앞으로 '책 이야기'는 이렇게 쓸 생각이다.
그 작가를 내 글에 초대해 '피처링'한다. 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작가의 매력을 부각시키면서,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