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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을 처음 알게 된 책은 《빨강의 자서전》이다. 앤 카슨은 "캐나다 출신의 시인, 에세이스트, 번역가, 고전학자이다. (...)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전공하고 이후 30여 년간 (...) 고전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 파피루스의 파편으로 남은 이야기를 현대의 시어로 재창작하거나 신화 속 등장인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한 일련의 작품들" 중 하나인 "《빨강의 자서전》은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중 열 번째 노역의 에피소드를 영웅이 아닌, 그가 화살로 쏘아 죽인 빨강 괴물 게리온의 입장에서 다시 쓴 작품이다."
게리온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며, 스테시코로스는 그에 관해 (...) 매우 긴 서정시를 썼다. 현재 84개의 파피루스 단편들과 여섯 개의 인용문이 남아 있으며 (...) 이 서정시는 에리테이아라 불리는 섬에서 마법의 빨강 소떼를 돌보며 조용히 살았던 이상한 날개가 달린 빨강 괴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 별안간 모든 게 느려지는 순간, 헤라클레스의 화살이 게리온의 머리통을 가른다. 우리는 헤라클레스가 그 유명한 몽둥이로 게리온의 작은 개를 죽이는 광경을 본다.
— 《빨강의 자서전》, 10-11
몇 페이지만 읽고도 이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앤 카슨은 시, 산문, 학술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지만, 파격적 책 형식으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어, 《녹스》는 "192쪽의 종이가 하나로 쭉 이어져 한 권의 책을 이루는 아코디언북"이고, 《플로트》는 "22개의 소책자(중철제본된 22개의 아티클)가 PVC 케이스에 담겨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제작이 어려운 책들을 포함해, 앤 카슨의 거의 모든 저서가 한국어판으로 출간이 되었는데, 앤 카슨의 첫 작품 《에로스, 달콤씁쓸한》은 왜 이제서야 나왔을까?
《에로스, 달콤씁쓸한》, 앤 카슨(지음), 황유원(옮김), 난다, 2025
Anne Carson, Eros the Bittersweet: An Essay (1986)
그건 이 책이, 앤 카슨이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에세이 형태로 개작한 결과물이라는 것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박사 학위 과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자신의 모든 학문적 역량을 이 논문에 집약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에세이 형태로 다시 썼다고는 하지만, 《빨강의 자서전》과 같은 책을 예상했던 독자에게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책들은 사서 읽고 싶게 만들겠다는 서점 주인의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누군가 앤 카슨의 책 중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이 《에로스, 달콤씁쓸한》은 추천 목록 한참 뒤에 자리잡을 것 같다.
잘 쓰여진 '에세이'를 기대한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에로스'라는 주제에 관한 천착과 그와 관련된 고대 그리스 고전들에 대한 방대한 참조, 저자만의 해석은 훌륭하다.
책 전체에 걸쳐 에로스를 설명하기 위해 반복되는 개념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집약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Sappho, BC 612?~?)의 〈단편 31〉(공교롭게 책의 31페이지에 있다)이다.
그는 내게 신들과 동등한 존재처럼 보이네
당신의 맞은편에
앉아서 당신의 감미로운 말과
사랑스러운 웃음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는그 남자는 — 오 그 광경은
내 가슴속 심장에 날개를 다네
당신을 잠시 바라보기만 해도 나는
할말을 잃기에그래: 혀는 굳어버리고, 피부 아래로는
희미한 불꽃이 질주하고
눈은 멀고 윙윙거리는 소리
귀를 가득 채워식은땀이 나를 붙들고 떨림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네, 풀보다 파리한
나는 죽은 목숨 — 혹은 거의 죽은 것처럼
나는 내게 보이네
앤 카슨은 이 시가 "삼각 분할 전술"(65)을 쓰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 세 각은 이렇다.
연인 자신
상대 연인
상대 연인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로 재정의된 연인
이것은 "그녀 자신, 상대 연인, "가만히 귀기울이는 남자"의 세 점으로 이루어진 욕망의 회로"(148)이다. 그리고 "완벽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완벽한 기쁨일 것이다. ... 하나는 실재적 이미지고, 다른 하나는 가능한 이미지다. 두 이미지를 모두 알면서 그 차이를 계속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 에로스라는 이름의 속임수다."(123)
[에로스의] "개념적 기반은 전통적으로 욕망의 달콤씁쓸한 성격에 있다. '나는 증오한다'와 나는 사랑한다'가 교차한다; 욕망이 손을 뻗으며 가로지르는 공간인 그곳에 에로스의 핵심과 상징이 있"(51)는데, "욕망이 손을 뻗는 것은 하나의 행위로 정의된다: (그 대상에 있어서) 아름답고, (그 시도에 있어서) 좌절된 것이며, (시간에 있어서) 영원한 행위로"(58) 말이다. 또한 그것은 "인식할 수 있는 가장자리 너머로 — 다른 무언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를 향해 — 손을 뻗으려는 충동"(188)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본성상 알고자 손을 뻗는다."
— 아리스토텔로스, 《형이상학》, A.1.980a21
또 다른 핵심 개념은 역설이다. "모든 인간적 욕망은 역설을 축으로 삼아 균형을 잡고 있다. 그것의 양극은 부재와 현존이고, 그것의 원동력은 사랑과 증오다."(28) "역설이란 손을 뻗어보지만 그 끝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는 생각의 일종이다. 그것이 손을 뻗을 때마다 생각 도중에 해답이 파악되는 것을 방해하는 거리 변경이 일어난다."(142)
그녀의 상상력이 실재하는 것(남편)에서 가능한 것(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으로 손을 뻗는 동안 역설적인 무언가가 발생한다.(163)
— 헬리오도로스의 소설 《에티오피아 이야기》에 대한 해석
'옮긴이의 말'에서도 지적했듯이, 이 책의 서문은 이질적으로 (고대 그리스 고전이 아니라) 카프카의 〈팽이〉 — "아이들이 돌리는 팽이를 붙잡으려고 그들 주위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한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앤 카슨은 이 이야기를 "우리가 은유에서 얻는 기쁨에 관한 것"이며 "우리가 왜 사랑에 빠지는지 그 이유에 관한 것"이라고 요약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내 맘대로)'은유'에 관한, 은유를 공부하기에 좋은 책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적 사고에서 일어나는 그런 가로막힘의 순간을 정확히 집어내는데, 그럴 때 정신은 이렇게 중얼거리는 듯하다: "그래, 그렇구나! 결국 내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그는 그것을 역설적 요소라 부르며 그것을 은유가 주는 본질적 쾌락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수사학》, 3.2.1412a6).(132)